514년

514년은 율리우스력의 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며, 6세기 초반에 해당하는 연도이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가 전개되고 있었으며, 특히 신라 역사에서 국가적 기틀이 다져지는 가운데 중요한 왕위 교체가 일어난 해로 기록된다. 세계사적으로는 유럽의 중세 초기,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남북조 시대에 해당하며 각 지역에서 정치적, 종교적 변동이 일어났다.

한국사에서 514년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신라 제22대 국왕인 지증왕의 승하와 제23대 법흥왕의 즉위이다. 지증왕은 재위 기간 동안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최고 지배자의 명칭을 '마립간'에서 '왕'으로 바꾸었으며, 우경(牛耕)을 장려하고 우산국을 정벌하는 등 국가 체제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514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맏아들인 원종(原宗)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훗날 율령 반포와 불교 공인을 통해 신라를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도약시킨 법흥왕이다.

같은 시기 백제와 고구려는 각각 제25대 무령왕과 제21대 문자명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백제의 무령왕은 514년 당시 웅진 천도 이후의 귀족 세력 갈등을 수습하고,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통제력을 강화하는 등 국력 회복에 매진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문자명왕은 장수왕의 손자로서 조부의 영토 확장 정책을 이어받아 부여를 병합하는 등 고구려 역사상 최대 판도를 유지하며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유럽 역사에서 514년은 기독교회의 중요한 인물 교체가 있었던 해이다. 7월 19일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51대 교황 심마코가 선종하였고, 곧바로 7월 20일에 교황 호르미스다가 제52대 교황으로 선출되어 즉위했다. 한편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에서는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의 단성론적 종교 정책에 반발하여 군사령관 비탈리아누스가 군대를 이끌고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위협하는 등 내부적인 갈등이 격화되었다.

중국 대륙은 남조와 북조가 대립하는 남북조 시대의 분열기였다. 남조는 양나라(梁)의 초대 황제인 무제(武帝) 소연이 통치하고 있었으며, 그는 불교를 강력히 장려하고 문화를 융성하게 하여 남조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었다. 반면 화북 지역을 지배하던 북조의 북위(北魏)는 선무제(宣武帝)가 통치하고 있었으나, 한화(漢化) 정책의 부작용과 지배층의 부패로 인해 점차 국가의 기틀이 흔들리며 훗날 쇠퇴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모순이 축적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