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42년은 율리우스력에 따라 월요일에 시작된 평년이다. 서기 1세기 전반에 해당하며, 동양과 서양의 여러 고대 국가가 체제를 정비하고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였다. 한반도에서는 가야 연맹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중국에서는 후한의 통치가 이어졌으며, 로마 제국에서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치세가 계속되고 있었다.
한국사에서 42년은 가락국(금관가야)의 건국 연도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따르면, 이해 3월 구지봉에서 구간(九干)과 백성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자 하늘에서 황금 알 여섯 개가 담긴 상자가 내려왔다고 전해진다. 그중 가장 먼저 태어난 인물이 수로왕이며, 그는 가락국의 초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나머지 다섯 명의 아이들도 각각 가야 소국들의 왕이 되어 가야 연맹체가 형성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가 자신의 세 번째 집정관직을 수행하며 제국을 통치하였다. 그는 로마의 고질적인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스티아 인근에 새로운 항구인 포르투스(Portus) 건설을 시작하였다. 또한 원로원과의 관계를 조정하고 관료 체제를 개편하여 행정 효율을 높이는 등 제국의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였다.
중국 후한에서는 광무제 유수가 재위 중이었으며, 남방 지역의 안정을 위해 마원 장군을 파견하였다. 마원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오늘날의 베트남 북부 지역인 교지에서 일어난 쯩 자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원정을 지속하였다. 이 원정을 통해 후한은 남방 영토에 대한 지배력을 다시 확립하였으며, 마원은 변방을 안정시킨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다.
같은 시기 한반도의 다른 국가들을 살펴보면, 고구려에서는 제3대 대무신왕이 재위하며 주변 소국들을 병합하고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있었다. 백제에서는 제2대 다루왕이, 신라에서는 제3대 유리 이사금이 각각 나라를 다스리며 농경을 장려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이처럼 42년은 동아시아와 지중해 세계 전역에서 고대 국가들의 기틀이 공고해지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