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년

382년은 동아시아에서 전진(前秦)의 세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이다. 전진의 부견은 중국 통일의 야욕을 품고 대대적인 정복 전쟁을 준비했다. 이 해에 부견은 장군 여광을 파견하여 서역 원정을 단행하게 했다. 여광의 원정군은 구사(龜玆) 등 여러 서역 국가들을 복속시켰으며, 이는 전진의 영향력이 중앙아시아까지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팽창 정책은 이듬해 벌어질 비수대전을 앞두고 국력을 소모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 간의 외교와 갈등이 지속되었다. 신라의 내물 마립간은 전진에 사신 위분(衛粉)을 보내 조공을 바치고 우호 관계를 맺었다. 당시 신라는 왜와 백제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북방의 강자인 전진과의 외교적 결속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했다. 한편 고구려는 소수림왕 12년으로, 전진과 긴밀한 교류를 유지하며 불교 수용과 율령 체제 정비를 통해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로마 제국에서는 테오도시우스 1세 치하에서 중요한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로마 제국은 서고트족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여 그들을 제국 내부인 발칸반도 북부에 정착시켰다. 이 조약은 서고트족에게 '연맹 부족(Foederati)'의 지위를 부여하였으며, 그들은 로마의 영토 안에서 자치권을 유지하는 대신 로마군을 위해 복무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이민족을 제국 체제 내로 대규모 수용하는 선례가 되었으며, 향후 제국의 구조적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되었다.

종교사적으로도 382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로마 교황 다마소 1세는 로마 공의회를 개최하여 성경의 정경화 작업을 추진했다. 다마소 1세는 자신의 비서였던 히에로니무스(제롬)에게 당시 통용되던 성경들을 정리하여 라틴어로 번역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 작업은 훗날 '불가타(Vulgata)'라고 불리는 라틴어 표준 성경의 모태가 되었으며,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서 천 년 넘게 권위를 인정받는 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서로마 제국 내부에서는 전통 신앙과 기독교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서로마 황제 그라티아누스는 로마 원로원에 세워져 있던 이교의 상징인 '승리의 제단'을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또한 그는 로마 전통 종교의 사제들에게 주어지던 국가적 지원과 특혜를 폐지했다. 이러한 조치는 로마 제국이 과거의 다신교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기독교 중심의 국가 체제로 변모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