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31년은 1세기의 31번째 해이며, 신해년(辛亥年)이다. 로마력으로는 로마 건국 기원(AUC) 784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고대 문명이 체계화되고 국가 간의 기틀이 잡히던 시기로, 동양에서는 후한과 삼국시대 초기가 이어졌으며 서양에서는 로마 제국이 번영하던 시기였다.
로마 제국에서는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통치하던 시기였다. 이 해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건은 근위대장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세야누스의 몰락이다. 세야누스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신임을 등에 업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로마의 실권자로 군림했으나, 황제 찬탈의 음모가 드러나면서 처형되었다. 이 사건 이후 로마 정계에는 대대적인 숙청이 일어났으며, 티베리우스는 카프리섬에 은거하며 공포 정치를 이어갔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각자의 체제를 정비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제3대 대무신왕 14년에 해당하며, 주변 부족 세력과의 경쟁 속에서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과정에 있었다. 백제는 제2대 다루왕 4년으로, 영토 확장과 왕권 강화를 도모하였다. 신라는 제3대 유리 이사금 8년이었으며, 전설에 따르면 이때 육부(六部)의 이름을 고치고 성(姓)을 하사하는 등 행정 체계를 정비하며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중국은 후한(後漢)의 광무제가 통치하던 건무 7년이었다. 광무제 유수는 신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고 한나라를 재건한 이후, 내치에 힘쓰며 민생을 안정시키고 있었다. 이 시기 광무제는 토지 조사인 도결(度結)을 시행하여 조세 제도를 투명하게 하고,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아 사회 질서를 재확립하는 데 주력하였다.
종교 및 문화적 측면에서 서기 31년은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로 분류되기도 한다. 성경 학자들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추정된다. 당시 유대 지역은 로마의 속주로서 복잡한 정치적, 종교적 갈등이 얽혀 있었으며,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새로운 사상적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천문학적으로는 고대 기록에 근거하여 이 시기 전후로 다양한 천문 현상이 관측되었음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