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년

273년은 서기 3세기의 후반기에 해당하는 해로, 로마 제국에서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치세 아래 제국의 재통합이 정점에 달한 시기였다. 전년도인 272년에 팔미라 제국의 제노비아 여왕을 제압했던 아우렐리아누스는 273년 팔미라에서 다시 발생한 반란을 철저히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한때 번영했던 도시 팔미라는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이는 동방 지역에서의 분리 독립 움직임이 완전히 종식되었음을 의미했다.

같은 해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이집트에서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반란을 일으킨 피르무스(Firmus)를 정벌했다. 피르무스는 팔미라와의 동맹을 시도하며 로마의 곡창지대인 이집트의 보급로를 차단하려 했으나, 아우렐리아누스의 신속한 대응으로 패배하고 처형되었다. 이로써 로마 제국은 동방의 모든 반란 세력을 일소하고 안정을 되찾았으며, 아우렐리아누스는 '세계의 복구자(Restitutor Orbis)'라는 칭호를 공고히 할 발판을 마련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서진(西晉)의 무제 사마염이 통치하던 시기였다. 서진은 위나라를 이어받아 천하 통일을 목적으로 남쪽의 오나라를 압박하고 있었다. 273년경 서진은 오나라 정벌을 위한 수군 양성과 병력 배치 등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특히 익주에서 대규모 함선을 건조하는 등 본격적인 통일 전쟁을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치며 정세를 관망하던 시기였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각자의 영역에서 체제를 정비하고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서천왕 4년으로, 북방 민족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왕권을 강화하던 때였다. 백제는 고이왕 40년에 해당하며, 관등제와 법령 정비를 통해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로서의 기틀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신라는 미추 이사금 12년으로, 가야 및 왜와의 외교적·군사적 긴장 관계 속에서 내정을 돌보며 국력을 보존하는 데 집중했다.

종합적으로 273년은 세계사적으로 거대 제국들이 내부 반란을 진압하거나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해 힘을 비축하던 전환기적 해였다. 로마는 분열된 제국을 하나로 묶는 과정의 막바지에 있었고, 중국은 삼국 시대의 종언을 고할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한반도 역시 각 국이 고대 국가로서의 내부 역량을 극대화하며 상호 경쟁을 이어가던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