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년은 3세기에 해당하는 해로, 육십갑자로는 신사년(辛巳年)이다. 단기로는 2594년, 불기로는 805년이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국의 삼국시대 말기와 한반도 삼국시대의 국가 기틀 확립기가 교차하는 시점이었으며, 서양에서는 로마 제국의 위기가 심화되던 때였다.
한반도의 신라에서는 제12대 왕인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이 사망하고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이 제13대 왕으로 즉위한 해이다. 이는 신라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으로 꼽힌다. 미추이사금은 김알지의 후손으로, 신라 역사상 최초로 왕위에 오른 김씨(金氏) 군주이다. 이전까지 박씨와 석씨가 주도하던 왕위 계승 구도에 김씨가 본격적으로 진입함으로써 신라의 권력 구조가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다.
백제는 제8대 고이왕(古爾王)의 재위 28년이었다. 고이왕은 백제의 관등제와 공복 제정을 통해 중앙 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군주로 평가받는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261년, 고이왕은 중국의 위(魏)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는 당시 북방의 강자인 고구려를 견제하고, 선진 문물을 수용하여 국제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고도의 외교적 전략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위(魏), 촉(蜀), 오(吳)의 삼국시대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위나라에서는 사마소(司馬昭)가 전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황제인 조환(曹奐)은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촉한(蜀漢)의 경우 후주 유선(劉禪)이 통치하고 있었으나, 환관 황호의 전횡과 국력 쇠퇴로 인해 멸망(263년)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오나라의 손휴(孫休) 또한 대내외적인 불안 요소를 안고 통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서양의 로마 제국은 갈리에누스 황제의 통치기였으나,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극심한 혼란 속에 있었다. 전년도에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사산조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힌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제국 각지에서 제위 찬탈 시도가 잇따랐다. 261년에는 마크리아누스(Macrianus) 일가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는 등 내전이 끊이지 않았으며, 서방에서는 갈리아 제국이 로마로부터 사실상 분리되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