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년은 3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연도로,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세계사적으로 중대한 정치적 격변이 발생한 해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가 요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며 주변국과의 국제 질서가 크게 요동쳤다. 서양에서는 로마 제국 내부의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하여 한 해 동안 무려 여섯 명의 황제가 교체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 삼국시대의 역사에서 238년은 요동을 지배하던 공손씨(公孫氏) 정권이 멸망한 해로 기록된다. 요동 태수 공손연은 위나라에 반기를 들고 스스로 연왕(燕王)이라 칭하며 자립을 시도했다. 이에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가 대군을 이끌고 요동 정벌에 나섰다. 사마의는 험난한 기후와 지형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양평성(襄平城)을 포위하여 함락시켰으며, 공손연 일가를 처형함으로써 약 반세기에 걸친 공손씨의 독자적인 요동 지배를 종식시켰다.
공손씨 정권의 멸망은 한반도의 고구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고구려의 동천왕은 요동의 패권을 두고 위나라와 외교적, 군사적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사마의의 요동 정벌 당시 위나라에 수천 명의 군사를 보내어 공손연 토벌을 지원했다. 이는 오랫동안 고구려의 서진을 가로막던 공손씨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강대국인 위나라와 고구려가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되어 훗날 조위-고구려 전쟁(244년)이 발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서양의 로마 제국에서 238년은 이른바 '여섯 황제의 해(Year of the Six Emperors)'로 불리는 극심한 내전기였다. 군인 황제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통치에 반발하여 아프리카에서 고르디아누스 1세와 2세가 반란을 일으켜 황제로 추대되었으나 곧 진압되어 사망했다. 이후 로마 원로원은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를 공동 황제로 내세워 막시미누스에 대항했고, 결국 막시미누스는 아퀼레이아 포위전 중 자신의 군단병들에게 암살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 역시 근위대에게 살해되면서, 최종적으로 13세의 어린 고르디아누스 3세가 단독 황제에 오르며 1년 간의 극심한 혼란이 일단락되었다.
한편, 요동의 정세 변화는 일본 열도에도 파급되었다. 위나라가 공손씨를 멸망시키고 낙랑군과 대방군을 장악하여 동아시아의 교역로를 직접 통제하게 되자, 야마타이국의 여왕 히미코는 대방군을 통해 위나라에 사신을 파견했다. 위나라의 명제 조예는 히미코의 사절을 맞이하고 그녀에게 '친위왜왕(親魏倭王)'이라는 칭호와 함께 금도장과 자색 끈(금인자수)을 하사했다. 238년에 일어난 이 일련의 사건들은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공손씨 멸망 이후 위나라를 중심으로 새로운 외교 관계를 맺으며 지정학적 구도가 재편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