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년

서기 226년은 율리우스력의 평년으로, 세계사적으로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중대한 권력 교체가 일어난 해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삼국시대의 세력 구도에 변화를 주는 군주의 교체가 있었으며, 서아시아에서는 고대 페르시아의 패권이 새로운 제국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다.

중국의 삼국시대 역사에서 226년은 위나라의 초대 황제인 조비(문제)가 병으로 사망한 해이다. 조비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조예(명제)가 위나라의 제2대 황제로 즉위하여 제국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한편, 오나라의 손권은 교주(현재의 베트남 북부 및 중국 남부 일부) 지역을 독자적으로 다스리던 사섭이 226년에 사망하자, 그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이 과정에서 사섭 가문의 세력은 붕괴하였고, 결과적으로 오나라가 화남 및 교주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중동 지역에서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아르사케스 왕조(파르티아)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패권을 장악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사산 왕조의 창건자인 아르다시르 1세는 파르티아의 수도인 크테시폰을 함락시켰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400년 가까이 중동 지역을 지배했던 파르티아 제국은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이후 수백 년 동안 로마 제국의 가장 강력한 적수로 자리 잡게 될 사산 왕조가 공식적으로 그 위용을 확립했다.

같은 시기 로마 제국은 세베루스 왕조의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가 통치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 내부적으로는 비교적 평온한 시기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동방에서 일어난 파르티아의 멸망과 사산 왕조의 대두는 로마의 동부 국경 안보에 새로운 위협으로 다가왔다. 새롭게 일어난 사산 왕조는 과거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영토와 영광을 재현하려 했고, 이는 곧 로마 제국과의 기나긴 영토 분쟁과 전쟁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한반도의 삼국시대는 고구려 산상왕, 백제 구수왕, 신라 내해 이사금의 통치기 후반에 해당했다. 이 시기 한반도 내부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쟁이나 급격한 정변에 대한 문헌 기록은 뚜렷하지 않으나, 각 국가는 내부 체제 정비와 국력 강화를 도모하며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고구려는 중국 요동 지역의 공손씨 세력, 그리고 새롭게 황제가 바뀐 위나라 등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국가의 안보와 외교적 이익을 도모하는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