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1년은 1세기의 21번째 해이며, 율리우스력으로는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시기는 고대 로마 제국과 동아시아의 정세가 급변하던 전환기적 시기로 기록된다. 당대의 주요 국가인 로마 제국, 중국의 신나라, 그리고 한반도의 삼국 시대 초기 국가들은 각기 내부적인 권력 구조의 변화와 외부적인 갈등을 겪으며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통치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해에 티베리우스의 아들인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집정관직을 역임하며 황실 내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러나 동시에 황실 근위대장인 루키우스 아이릴리우스 세야누스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세야누스는 로마 시내에 근위대 병영을 통합하여 설치함으로써 군사적 실권을 장악했고, 이는 향후 로마 정계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멸망의 전조를 보이며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서기 21년은 신나라 통치 말기에 해당하며, 가혹한 통치와 화폐 제도의 실패, 그리고 대규모 기근으로 인해 민심이 완전히 이반된 상태였다. 농민 반란군인 적미군과 녹림군이 세력을 확장하며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무력화시켰으며, 이러한 사회적 혼란은 결국 2년 뒤 신나라의 멸망과 후한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기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지며 영토 확장과 내부 정비에 주력하고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제3대 대무신왕이 재위하며 주변 소국들을 정복하고 부여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등 군사적 역량을 강화하던 시기였다. 백제에서는 시조 온조왕이 통치하며 영토를 안정시키고 있었고, 신라에서는 남해 차차웅이 국정을 이끌며 박, 석, 김 삼성 간의 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서기 21년은 고대 문명들이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정교화하던 과정에 있었다. 비록 동양과 서양 사이의 직접적인 교류는 제한적이었으나, 각 지역의 제국과 왕국들은 내부적인 모순을 해결하거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했다. 이 해의 사건들은 비록 단편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으나, 고대 사회의 정치적 역동성과 국가 간의 흥망성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