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칸 영화제

2000년 제53회 칸 영화제는 5월 10일부터 5월 21일까지 프랑스 칸에서 개최되었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뤼크 베송이 심사위원장을 맡았으며,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전 세계 영화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번 영화제는 다양한 국적과 실험적인 기법을 가진 작품들이 대거 출품되어 예술적 스펙트럼이 넓었다는 평을 받았다.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은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연출한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가 차지했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가수 비요크가 주연을 맡아 열연한 이 작품은 디지털 비디오 형식을 도입한 혁신적인 뮤지컬 영화로, 인간의 비극을 강렬하게 묘사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요크는 이 작품을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며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대상(Grand Prix)은 중국의 장원 감독이 연출한 '귀신이 온다(Devils on the Doorstep)'에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 형식을 빌려 전쟁의 비극과 인간성을 성찰했다. 감독상은 '하나 그리고 둘(Yi Yi)'을 연출한 대만의 에드워드 양이 수상하며 아시아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남우주연상은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에서 열연을 펼친 홍콩 배우 양조위가 차지했다.

한국 영화사 측면에서도 2000년 칸 영화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판소리와 영화적 이미지를 결합한 독창적인 형식은 현지 평단으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으며, 이는 이후 한국 영화가 칸 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이 외에도 각본상은 '간호사 베티'의 제임스 플램버그와 존 C. 리처즈가 수상했으며, 심사위원상은 로이 안데르손의 '2층에서 들리는 노래'와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칠판'이 공동 수상했다. 제53회 칸 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강세와 더불어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영화적 시도들이 인정받으며 영화 예술의 미래적 방향성을 제시한 대회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