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96 농구대잔치는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아마추어 시대의 최절정기이자, 1997년 프로농구(KBL) 출범 직전의 마지막 정규 시즌 대회로서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995년 11월에 개막하여 1996년 2월까지 치러진 이 대회는 당시 '오빠 부대'로 불리는 강력한 팬덤과 국민적 관심을 바탕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실업팀과 대학팀이 한데 어우러져 진검승부를 펼치는 농구대잔치 특유의 운영 방식은 세대 간의 대결 구도를 형성하며 수많은 명경기를 만들어냈다.
대회 구성 측면에서는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 전통의 실업 강호들과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등 대학 농구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팀들이 대거 참여하여 우승컵을 놓고 다퉜다. 특히 서장훈과 우지원이 버틴 연세대학교와 현주엽, 전희철, 김병철이 포진한 고려대학교의 라이벌전은 실업팀 간의 경기 이상의 시청률과 관객 동원력을 기록했다. 여기에 문경은이 입대한 상무(국군체육부대)까지 가세하면서 대회는 예측 불허의 전개로 이어졌다.
정규리그를 거쳐 진행된 플레이오프 결과, 결승전에서는 '농구 대통령' 허재와 강동희, 김유택이 이끄는 실업 최강 기아자동차와 문경은, 이상윤 등이 활약한 상무가 맞붙게 되었다. 기아자동차는 노련한 경기 운영과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상무의 패기를 잠재웠다. 결국 기아자동차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상무를 제압하며 통산 7번째 우승을 달성, 실업 농구의 절대 강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대회 최우수선수(MVP)는 우승의 주역인 허재가 차지했다. 허재는 손등 부상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고감도 득점력과 경기 조율 능력을 선보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신인상 부문에서는 연세대학교의 서장훈이 압도적인 기량으로 주목받았으며, 각 포지션별 베스트 5에는 허재, 강동희, 전희철, 서장훈 등이 이름을 올려 당시 한국 농구의 화려한 선수층을 증명했다.
1995-96 농구대잔치는 한국 농구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마지막 페이지로 남았다. 이 대회를 끝으로 주요 스타 플레이어들과 실업팀들이 프로화를 준비하게 되었으며, 아마추어 농구의 열기는 자연스럽게 프로농구로 이어지는 가교 구실을 했다. 당시 농구대잔치가 보여준 폭발적인 대중성은 이후 한국 스포츠 마케팅과 팬 문화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