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9년은 기원후 1세기의 19번째 해이며, 육십간지로는 기해년(己亥年)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고대 로마 제국이 지중해 세계를 평정하고 안정기에 접어든 시점인 동시에, 동아시아에서는 한나라의 맥이 끊기고 왕망의 신나라가 통치하던 격동의 시기였다. 세계 각지에서는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내부적인 정치 변화와 영토 확장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가 이어지고 있었으나, 제국의 영웅이자 유력한 후계자였던 게르마니쿠스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게르마니쿠스는 게르마니아 원정에서 큰 공을 세워 로마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인물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제국 전역에 큰 슬픔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사건은 시리아 총독 피소와의 갈등 설과 황제 티베리우스의 배후설 등 수많은 음모론을 낳았으며, 로마 황실 내부의 권력 구도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동아시아의 중국 대륙에서는 왕망이 세운 신(新)나라가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망이 추진한 급진적인 유교적 개혁 정책들은 현실과 동떨어져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고, 화폐 제도의 잦은 변경과 토지 국유화 정책은 농민과 호족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또한 잇따른 자연재해와 흉작으로 인해 민심이 극도로 악화되었으며, 이는 훗날 적미의 난과 녹림군의 봉기 등 대규모 반란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신나라는 대외적으로도 주변 민족들과 마찰을 빚으며 국력이 점차 쇠퇴하고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 시대의 초기 국가 형성이 진전되고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제3대 대무신왕 2년으로, 부왕인 유리왕의 뒤를 이어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주변 세력에 대한 정복 전쟁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백제는 온조왕 37년이었으며,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농경을 장려하며 국력을 쌓고 있었다. 신라는 남해 차차웅 16년으로, 박씨 왕실의 기반을 공고히 하고 주변의 소국들과 경쟁하며 국가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이 외에도 중앙아시아에서는 인도-파르티아 왕국의 건국자인 곤도파레스 1세가 세력을 확장하며 북인도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는 파르티아 세력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왕국을 건설했으며, 이는 동서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안정과 문화적 교류에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처럼 서기 19년은 세계 각국이 고대 국가로서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내부적인 갈등을 겪으면서도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