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년은 세계사적으로 근대적 체제가 정립되고 다양한 사회적 변동이 일어난 해였다. 서유럽에서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며 63년간 이어진 '빅토리아 시대'가 시작되었다. 윌리엄 4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는 영국과 하노버 왕국 사이의 동군연합이 종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노버 왕국은 여성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지 않는 살리카 법을 따랐기 때문에, 빅토리아의 숙부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가 하노버의 국왕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경제적으로 가혹한 시련이 닥친 '1837년 공황'이 발생했다. 뉴욕의 은행들이 금과 은으로의 태환을 중단하면서 시작된 이 공황은 투기적인 토지 거래의 붕괴, 면화 가격의 하락, 그리고 영국의 긴축 재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났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은행과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속출했으며, 미국 경제는 향후 1840년대 중반까지 장기적인 불황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당시 마틴 밴 뷰런 대통령 정부에 커다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기존 질서의 동요가 관찰되었다. 조선에서는 헌종 재위 3년째를 맞이하여 안동 김씨 세도 정치 하의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의 지배 체제에 반기를 든 '오시오 헤이하치로의 난'이 오사카에서 발생했다. 전직 관료였던 오시오 헤이하치로가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일으킨 이 반란은 비록 단기간에 진압되었으나, 막부의 무능함을 폭로하고 일본 근대화 이전의 사회적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과학 기술과 문화 부문에서는 인류의 삶을 바꿀 혁신적인 진보와 비극적인 사건이 공존했다. 미국의 사무엘 모스는 전신기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여 정보 통신 혁명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프랑스의 루이 다게르는 실용적인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입을 완성해 시각 매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문학계에서는 러시아의 국민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벌인 결투 끝에 입은 부상으로 사망하며 세계 문학사에 큰 손실을 남겼다.
또한 1837년은 미국 미시간주가 연방의 26번째 주로 승격된 해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찰스 디킨스가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연재하기 시작하며 산업 혁명기 영국 사회의 하층민 삶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처럼 1837년은 제국주의의 팽창과 자본주의의 진통, 그리고 근대적 기술과 예술의 태동이 맞물린 격동의 시기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