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7년

1767년은 18세기 중반의 격변기에 속하며, 서구 열강의 팽창과 동양 전통 왕조들의 변화가 교차하는 시기였다. 이 해에는 북미 대륙의 독립 열기를 자극한 영국 의회의 조세 정책이 발표되었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아유타야 왕조가 멸망하는 등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잇따랐다. 과학과 탐험 분야에서도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며 근대로의 이행이 가속화되었다.

서구권에서는 영국 정부가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타운젠드법(Townshend Acts)을 제정하였다. 이 법안은 유리, 납, 페인트, 종이, 차 등에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식민지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결국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는 구호를 확산시키며 미국 독립 혁명의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다. 같은 시기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는 예수회를 본국과 식민지에서 전격 추방하며 가톨릭 교회와 세속 권력 간의 갈등을 드러냈다.

남아시아에서는 미얀마의 꼰바운 왕조가 태국의 아유타야 왕조를 침공하여 수도를 함락시키고 400여 년의 역사를 끝냈다. 이 전쟁으로 아유타야는 폐허가 되었으나, 곧이어 탁신 장군이 전열을 가다듬어 톤부리 왕조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청나라는 미얀마와의 전쟁(청-미 전쟁)을 지속하며 국경 분쟁을 겪고 있었으며, 건륭제 통치하의 전성기를 누리면서도 외부 세력과의 군사적 충돌이 빈번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조선에서는 영조 43년에 해당하며, 탕평책을 통해 당쟁의 폐단을 억제하고 왕권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영조는 민생 안정을 중시하며 성리학적 질서를 공고히 하는 정책을 펼쳤다. 또한 이 시기에는 실학의 기틀이 닦이면서 박제가, 이덕무 등 후일 북학파로 불릴 인물들이 청년기를 보내며 학문적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이는 향후 조선 사회의 개혁론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학술적 흐름의 준비기였다고 평가받는다.

탐험과 과학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영국 해군의 새뮤얼 월리스(Samuel Wallis)가 돌핀호를 이끌고 태평양을 항해하던 중 유럽인 최초로 타히티섬을 발견하였다. 이는 남태평양에 대한 유럽의 관심을 증폭시켰으며, 이후 제임스 쿡의 탐험으로 이어지는 교두보가 되었다. 과학계에서는 영국의 조지프 프리스틀리가 탄산수를 발명하는 등 화학 분야의 초기 실험적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