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8년

1708년은 조선 숙종 34년에 해당하는 해로, 조선의 내정에서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대동법(大東法)의 확대 실시이다. 이해에 경상도 지역에서 대동법이 전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징수하는 제도가 한반도의 주요 농업 지역으로 넓어졌다. 이는 방납의 폐단을 막고 농민의 조세 부담을 줄여 민생 안정과 국가 재정 확충에 기여한 중요한 경제적 조치로 평가받는다.

유럽에서는 대북방전쟁(Great Northern War)이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스웨덴의 국왕 카를 12세는 러시아 제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대규모 러시아 원정을 감행했다. 1708년 7월, 스웨덴군은 홀로브친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진격을 이어갔으나, 9월에 벌어진 레스나야 전투에서 보급품을 운송하던 스웨덴 증원군이 러시아군에게 대패하며 전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 보급 부대의 패배는 훗날 스웨덴군이 러시아 동토에서 궤멸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여파가 지속되었다. 1708년 7월, 영국과 네덜란드 등이 참여한 대동맹군은 오우데나르데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를 발판 삼아 대동맹군은 프랑스의 요새였던 릴(Lille)을 공성 끝에 함락시켰다. 이러한 군사적 성과는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프랑스의 기세를 꺾고 유럽 내 세력 균형을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프랑스는 심각한 전쟁 비용 부담과 기근에 시달리게 되었다.

일본의 에도 시대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가톨릭 선교사 지오반니 바티스타 시도티(Giovanni Battista Sidotti)가 규슈 야쿠시마에 상륙했다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일본은 쇄국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기에 시도티는 곧바로 에도로 압송되었다. 그는 에도에서 유학자 아라이 하쿠세키와 문답을 나누었으며, 이는 하쿠세키가 서양의 사정을 기록한 ‘서양기문(西洋紀聞)’을 저술하는 바탕이 되었다. 이 사건은 일본 지식인들이 서구 문물을 학술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중요한 계기 중 하나로 꼽힌다.

영국에서는 1708년에 동인도 회사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의 영국 동인도 회사와 새롭게 설립되었던 영국 동인도 무역 회사가 공식적으로 합병하여 '인도와 무역하는 영국 상인들의 연합 회사'로 재탄생했다. 이 합병을 통해 영국은 인도 및 아시아 지역에서의 무역 독점권을 강화하고 자국 내 상업 세력 간의 내분을 종식시켰으며, 이는 훗날 대영제국이 인도를 식민 지화하는 경제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