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5

1685년은 17세기 후반 서유럽 절대왕정의 권력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이자, 서양 음악사에서 거대한 전환점이 마련된 해이다. 영국에서는 2월에 찰스 2세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제임스 2세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가톨릭 신자였던 제임스 2세의 즉위는 개신교 중심의 영국 사회와 의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이는 이후 몬머스 반란과 같은 내부 갈등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은 훗날 명예혁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초전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가 10월에 퐁텐블로 칙령을 선포하여 과거 앙리 4세가 공포했던 낭트 칙령을 폐지하였다. 이 결정으로 인해 프랑스 내 개신교도인 위그노들은 종교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했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위그노가 네덜란드, 영국, 프로이센 등지로 망명하였으며, 이들 중 다수가 숙련된 수공업자와 상인이었기에 프랑스는 경제와 산업 측면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반면 위그노를 받아들인 국가들은 그들의 기술력 덕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음악사적 측면에서 1685년은 전무후무한 해로 기록된다. 바로크 음악의 완성자로 평가받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이해에 독일에서 태어났다. 바흐는 대위법적 음악의 정점을 찍으며 서양 음악의 기초를 닦았고, 헨델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건반 음악의 거장 도메니코 스카를라티가 태어났다. 동시대에 탄생한 이 세 명의 거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바로크 시대의 음악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그들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인류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전해진다.

동아시아에서는 청나라의 강희제가 제국을 통치하며 내치와 외치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강희제는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 지역인 아무르강 유역에 군대를 파견하여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이는 훗날 네르치인스크 조약의 배경이 되었다. 또한 서구의 과학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강희제는 예수회 선교사들을 등용하여 천문학과 지리학 등 서양 학문을 수용하는 데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의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생류연민의 영'을 공포하며 살생을 금지하는 독특한 정책을 시행하던 시기였다.

과학과 지성사 분야에서는 근대적 방법론이 점차 확립되고 있었다. 아이작 뉴턴은 중력과 운동 법칙을 체계화한 그의 역작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의 출판을 준비하며 집필에 몰두하고 있었다. 유럽 전역에서는 학술 단체들이 활성화되었고, 서신 교환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는 지식인 네트워크가 공고해졌다. 이처럼 1685년은 정치적 억압과 종교적 갈등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과학의 영역에서 근대를 향한 거대한 도약이 준비되던 역동적인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