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1년은 17세기 후반의 평년으로, 서기 연도이다. 이 해는 전 세계적으로 절대왕정의 체제 정비와 식민지 확장, 그리고 국제 관계의 재편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청나라와 조선이 내부적인 권력 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었으며, 유럽에서는 열강들 사이의 영토 분쟁과 신대륙으로의 진출이 가속화되었다.
조선에서는 숙종 7년에 해당한다. 1680년 경신환국을 통해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집권한 이후, 서인 세력이 정국을 주도하며 왕권과 신권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숙종은 환국 정치를 통해 붕당 간의 견제를 유도하며 왕권을 강화해 나갔다. 경제적으로는 대동법의 시행 지역이 점차 확대되고 화폐 유통에 관한 논의가 지속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의 기틀이 마련되고 있었다.
서구권에서는 북아메리카 식민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3월 4일, 영국의 국왕 찰스 2세는 퀘이커교도인 윌리엄 펜에게 부친의 부채를 갚는 대신 북아메리카의 넓은 영지를 하사하는 칙령을 내렸다. 이 영지는 훗날 펜실베이니아 식민지가 되었으며, 종교적 관용과 민주적 자치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이후 미국의 건국 이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방면에서는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긴장이 일단락되었다. 양국은 1월에 바흐치사라이 조약을 체결하여 20년간의 휴전에 합의했다. 이 조약을 통해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양국의 영향권이 설정되었으며, 러시아는 키예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이는 러시아가 유라시아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외교적 성과였다.
중국 청나라에서는 강희제가 주도한 삼번의 난 진압이 종결 단계에 접어들었다. 반란 세력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운남성이 점령되고 오세번이 자결함으로써 8년간 이어진 내란이 완전히 평정되었다. 이로써 청나라는 중국 본토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확보했으며, 강희제의 친정 체제가 강화되면서 청나라의 전성기인 '강건성세'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발판이 마련되었다.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는 상징적인 변화가 관찰되었다.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 서식하던 도도새의 마지막 생존 기록이 이 시기 전후로 나타나며, 이후 도도새는 멸종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와 생물 종의 멸종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남았다. 또한 독일의 바로크 음악 작곡가인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이 이 해에 출생하여 향후 서양 음악사에 지대한 공헌을 할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