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5년

1675년은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이 즉위한 지 2년째 되는 해였다. 이해에는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를 둘러싼 제2차 예송 논쟁인 '갑인예송'의 여파가 지속되었다. 남인이 정권을 장악한 가운데, 서인 세력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놓고 남인 내부에서 강경파인 청남과 온건파인 탁남으로 분열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숙종은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며 붕당 정치의 흐름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의 일환으로 중요한 전투들이 벌어졌다. 특히 6월에 발생한 페르벨린 전투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가 이끄는 브란덴부르크 군대는 당시 북유럽의 강자였던 스웨덴 군대를 격파했다. 이 승리는 프로이센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독일 통일의 먼 기원이 되는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과학 분야에서는 현대 천문학과 항해술의 기초가 닦였다. 영국의 국왕 찰스 2세는 6월 22일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의 설립을 명하는 칙령을 내렸다. 이는 항해사들이 경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목적이었으며, 존 플램스티드가 초대 왕립 천문관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천문학자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는 토성의 고리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틈은 오늘날 '카시니 간극'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북미 대륙에서는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과 원주민 연합군 사이의 처절한 전쟁인 '킹 필립 전쟁'이 발발했다. 왐파노아그 족의 추장 메타콤(영어명 킹 필립)을 중심으로 한 원주민들은 영국 식민지의 무분별한 확장에 저항하여 봉기했다. 이 전쟁은 뉴잉글랜드 지역 식민 지배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전쟁 중 하나였으며, 결과적으로 원주민 세력이 쇠퇴하고 영국 식민 세력이 북미 동부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학 및 철학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10월 29일자 원고에서 현대 미적분학의 핵심 기호인 적분 기호(∫)를 처음으로 사용하며 독자적인 미적분 체계를 정립해 나갔다. 한편, 네덜란드의 현미경 제작자인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은 현미경을 통해 박테리아를 처음으로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미생물학의 문을 열었다. 이러한 성과들은 17세기 과학 혁명을 더욱 가속화하는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