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9

1669년은 17세기 후반의 역사적 흐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해이다. 그레고리력으로는 화요일, 율리우스력으로는 금요일에 시작된 평년이다. 이 해에는 오랫동안 지속되던 지정학적 갈등이 해소되거나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는 등, 동서양 모두에서 정치, 사회, 과학, 예술 분야에 걸쳐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특히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싼 전쟁의 종료와 근대 과학의 여명기를 알리는 발견들이 이 해를 기점으로 기록되었다.

국제 정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은 21년 동안 이어진 크레타 전쟁(칸디아 공방전)의 종결이다. 오스만 제국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점령하고 있던 크레타섬의 요충지 칸디아(현재의 이라클리온)를 1648년부터 포위 공격해왔다. 1669년 9월, 베네치아의 사령관 프란체스코 모로시니는 더 이상의 저항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오스만 제국에 항복했다. 이로써 오스만 제국은 크레타섬을 영토로 편입하며 동지중해에서의 영향력을 극대화했고, 베네치아는 지중해 해상 무역의 거점을 상실하며 세력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과학사적으로 1669년은 화학과 지질학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해이다. 독일의 연금술사 헤니히 브란트는 사람의 소변을 증류하여 실험하던 중 어두운 곳에서 빛을 내는 물질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바로 원소 인(Phosphorus)이다. 이는 고대 이후 처음으로 발견된 새로운 원소로 기록되며 근대 화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덴마크의 과학자 니콜라스 스테노는 《고체 안에 자연적으로 갇힌 고체에 대한 논문》을 출판하여 지층 누중의 법칙, 수평 퇴적의 법칙 등 지질학의 기본 원리를 정립했다.

자연재해 측면에서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에트나 화산 대폭발이 있었다. 1669년 3월에 시작된 이 분화는 역사상 에트나 화산의 가장 파괴적인 활동 중 하나로 꼽힌다. 분화구에서 쏟아져 나온 용암은 인근 마을들을 덮쳤고, 결국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인 카타니아의 성벽까지 무너뜨리며 도시의 상당 부분을 파괴했다. 이 사건은 화산 활동이 인간 거주지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문화 예술계에서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거장 렘브란트 반 레인이 10월 4일 암스테르담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말년에 재정적 파산과 가족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불행을 겪었으나, 예술적 성취는 정점에 달해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프랑스에서는 극작가 몰리에르의 희극 《타르튀프》가 종교적 위선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가, 5년 만인 1669년에 대중 공연 허가를 받아 무대에 올랐고 기록적인 흥행을 거두었다.

한국사에서 1669년은 조선 현종 10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 조선 조정은 양 난 이후의 국가 재건과 민생 안정을 위한 제도 정비에 힘썼다.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김좌명의 건의로 전라도 지역에 대동법이 확대 실시된 것이다. 이전까지 산간 고을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대동법을 도 전역으로 넓힘으로써 백성들의 공납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다. 또한, 수도 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남한산성을 관할하는 수어청(守禦廳)이 정식으로 창설되어 조선 후기 5군영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