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5년

1665년은 유럽 역사에서 대역병과 전쟁으로 점철된 해였다. 특히 영국 런던에서는 페스트가 재발하여 대규모 인명 피해를 입힌 '런던 대역병'이 발생했다. 이 전염병으로 인해 런던 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만 명의 시민이 사망했으며, 도시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국왕 찰스 2세와 왕실 가족들은 감염을 피해 런던을 떠나 살즈버리와 옥스퍼드 등지로 피신했으며, 당시 사회는 극심한 혼란과 공포에 휩싸였다.

과학사 측면에서 1665년은 인류의 지성사가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시기였다.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훅은 현미경 관찰 기록을 담은 저서 『마이크로그래피아(Micrographia)』를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코르크 조직을 관찰하며 생물학적 최소 단위인 '세포(cell)'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또한, 아이작 뉴턴은 런던의 대역병을 피해 고향인 울즈소프로 내려가 머물며 미적분학의 기초를 닦고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영감을 얻는 등 과학적 업적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 시기는 훗날 뉴턴의 '경이로운 해(Annus Mirabilis)'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세계 최초의 근대적 학술지들이 창간되어 학문적 소통의 방식이 변모한 해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1월에 『주르날 데 사방(Journal des sçavans)』이, 영국 왕립학회에서는 3월에 『철학 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s)』가 각각 발간되기 시작했다. 이는 과학 지식의 공유와 검증 시스템이 체계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천문학 분야에서는 이탈리아의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가 목성의 대적점(Great Red Spot)을 관측하여 기록에 남겼으며, 빛의 회절 현상을 발견한 그리말디의 유작이 출판되어 광학 발전에 기여했다.

정치적·군사적 측면에서는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의 제2차 영란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665년 6월에 벌어진 로스토프트 해전(Battle of Lowestoft)에서 영국 해군은 네덜란드 함대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쟁은 해상 무역권과 식민지 지배권을 둘러싼 두 해양 강국 간의 패권 다툼으로, 이후 수년간 유럽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같은 시기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중앙집권화를 강화하며 절대왕정의 기틀을 다지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조선의 현종 6년에 해당하며, 당시 조선 사회는 잦은 자연재해와 기근으로 인해 민생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조정에서는 대동법의 확대 실시를 둘러싼 논의가 지속되었으며, 남인과 서인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내재해 있었다. 청나라에서는 강희제가 즉위한 지 4년째 되는 해로, 오배(Oboi)를 비롯한 보정대신들이 실권을 쥐고 국정을 운영하던 시기였다. 일본은 에도 시대 초기로, 제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의 통치 아래 막부 체제의 안정을 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