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7

1647년은 17세기의 중반부에 해당하는 해로,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이 종결로 치닫던 시기였다. 3월 14일, 바이에른 선제후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웨덴 사이에 울름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은 바이에른이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3세와의 동맹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중립을 지키기로 한 결정이었으며, 이는 전쟁의 판세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말 바이에른은 다시 황제 측에 합류하며 전쟁의 불씨를 이어갔다.

영국에서는 잉글랜드 내전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었다. 1월, 스코틀랜드 군대는 포로로 잡고 있던 국왕 찰스 1세를 잉글랜드 의회에 인도하였다. 이후 의회군 내부에서는 권력 구조와 정치적 권리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었는데, 특히 10월과 11월 사이에 벌어진 '퍼트니 토론'은 현대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평등파(Levellers)와 군 지도부 사이에서 벌어진 이 토론은 보통 선거권과 헌법적 권리에 대한 급진적인 사상을 논의하는 장이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명청 교체기의 혼란이 수습되며 청나라의 지배력이 공고해지던 시기였다. 조선에서는 인조 25년에 해당하며, 병자호란 이후의 전후 복구와 국방 강화에 주력하고 있었다. 특히 북방의 경계를 살피고 청나라와의 외교적 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였다.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의 제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통치하며 쇄국 정책과 막부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었다.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자연과학의 발전이 지속되었다.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는 수은 기압계 실험을 통해 진공의 존재를 증명하며 근대 물리학의 기초를 닦았으나, 1647년 10월에 사망하였다. 프랑스의 블레즈 파스칼은 토리첼리의 실험을 재현하고 확장하며 유체역학에 기여하였고, '진공에 관한 새로운 실험'이라는 저술을 통해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또한 폴란드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헤벨리우스는 달의 지형을 상세히 기록한 '셀레노그라피아(Selenographia)'를 출판하여 천문학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647년에는 대규모 자연재해도 발생하였다. 5월 13일,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지진은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남미 지역에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도시 재건 과정에서 건축 양식과 방재 대책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1647년은 정치적 격변과 과학적 성취, 그리고 자연의 거대한 위력이 교차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