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2년은 17세기 전반기 동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정치적 격변과 갈등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와 후금 사이의 전쟁이 격화되었으며,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의 전운이 깊어지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광해군 재위 14년에 해당하며, 명나라의 원병 요청과 후금의 압박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유지하기 위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1622년 정월, 명나라 군대가 광녕 전투에서 후금의 누르하치 군대에게 대패하면서 요동 지역의 주도권이 후금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었다.
유럽에서는 종교적 갈등과 영토 분쟁이 결합된 30년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1622년 4월에는 빔펜 전투가 발생하여 가톨릭 리그 군대가 개신교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6월에는 회히스트 전투가 벌어져 가톨릭 측의 우세가 굳어졌다. 이러한 군사적 충돌은 신성 로마 제국 내의 권력 지형을 재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영국에서는 제임스 1세가 의회를 해산하며 왕권과 의회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프랑스에서는 리슐리외 추기경이 임명되어 향후 프랑스 절대주의 왕정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북미 대륙에서는 영국 식민지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발생했다. 1622년 3월 22일, 버지니아 식민지의 제임스타운 인근에서 파우하탄 연맹의 원주민들이 영국 정착민들을 습격한 ‘제임스타운 대학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식민지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347명의 정착민이 사망했으며, 이는 초기 영국 식민지 정착 시도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이후 영국 정부는 버지니아 회사의 경영권을 회수하고 버지니아를 국왕 직할령으로 전환하는 정책적 변화를 꾀하게 되었다.
종교적 측면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체계적인 선교 활동이 강화된 해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5세는 포교성(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을 창설하여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가톨릭 포교를 조직화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의 기독교 탄압이 극에 달해, 이른바 ‘겐나 대순교’가 발생했다. 나가사키에서 선교사와 신자 50여 명이 화형과 참수형에 처해졌으며, 이는 일본 내 기독교 세력이 완전히 지하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 및 사회 분야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건들이 있었다. 프랑스의 위대한 극작가 몰리에르가 이 해에 태어나 향후 유럽 근대 희극의 황금기를 예고했다. 조선 내부에서는 광해군의 실정과 특정 당파의 권력 독점에 반발하는 서인 세력의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었으며, 이는 이듬해인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이어지는 전조가 되었다. 1622년은 이처럼 대륙 간의 교류와 충돌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며 근대 세계사의 흐름이 결정되던 중요한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