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백두산 지진은 조선 선조 30년인 1597년 10월 6일(음력 8월 26일) 백두산 인근 함경도 일대를 진앙으로 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관측된 대규모 지진이다. 현대 지진학자들의 연구와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추정할 때 이 지진의 규모는 약 7.0에서 최대 8.0에 달했을 것으로 분석되며, 한반도 역사상 기록된 가장 강력한 지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진앙인 함경도 삼수, 갑산 등 백두산 주변 지역은 물론이고 한양(서울)과 충청, 전라, 경상 등 삼남 지방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진동이 감지되었다.
당시 지진의 양상은 《조선왕조실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함경도 일대에서 산악이 크게 흔들리고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이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진앙과 가까운 함경도 삼수와 갑산 지역에서는 같은 날 여러 차례의 지진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한양에서도 지진으로 인해 집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놀라 밖으로 대피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팔도에서 동시에 지진이 보고된 점은 당시 지진의 파급력이 매우 광범위했음을 증명한다.
이 지진은 일반적인 지각 내 단층 운동에 의한 구조성 지진일 가능성과 함께 백두산의 화산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된 화산성 지진일 가능성이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1597년 무렵 백두산 일대에서 화산재로 추정되는 강하 물질이나 연기가 관측되는 등 화산 활동의 징후가 존재했다. 따라서 지진학자들과 화산학자들은 이 거대 지진이 백두산 지하 깊은 곳의 마그마가 이동하거나 마그마 방(magma chamber)의 압력이 변화하면서 유발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한다.
현대 지진학 및 방재 분야에서 1597년 백두산 지진은 한반도의 지진 위험도를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한 핵심 자료로 활용된다. 이 기록은 한반도 내부, 특히 북부 지역에서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역사적 증거다. 학자들은 이 지진 기록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지진 규모를 산정하며, 이는 원자력 발전소나 대형 댐 등 주요 국가 인프라의 내진 설계 기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과학적 근거가 된다.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이 지진은 임진왜란의 연장선인 정유재란이 발발한 해에 일어나 조선 사회에 극심한 혼란을 가중시켰다. 계속되는 전란으로 국가 시스템과 민생이 처참하게 무너진 상황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대지진까지 발생하여 백성들의 공포와 민심의 동요가 극에 달했다. 이처럼 1597년 백두산 지진은 지질학적, 화산학적 연구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전쟁과 거대 자연재해가 겹친 조선 중기의 참혹한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