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5

1535년은 16세기 중반의 해로, 유럽의 종교 개혁이 가속화되고 대항해 시대를 통한 신대륙 탐험과 식민지 건설이 활발히 전개된 시기다. 전 세계적으로 중세적 질서가 붕괴하고 근대적 국가 체계와 세계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치적, 종교적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특히 유럽과 아메리카, 그리고 오스만 제국을 중심으로 인류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났다.

유럽에서는 영국의 종교 개혁이 상징적인 사건을 낳았다. 국왕 헨리 8세의 수장령에 반대하며 가톨릭의 권위를 옹호했던 토머스 모어와 존 피셔 추기경이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이는 영국 국교회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과정에서 왕권이 종교적 권위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또한 독일 뮌스터에서는 급진적 재세례파의 반란이 진압되며 지도자들이 처형되었고, 이로 인해 종교 개혁 운동 내의 급진주의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었다.

탐험과 식민지 건설 분야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 열강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는 두 번째 항해를 통해 성 로렌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 현재의 몬트리올 지역에 도달했으며, 이는 훗날 북미 지역에 프랑스 식민지가 형성되는 기반이 되었다. 남미에서는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제국 정복 이후 새로운 거점 도시인 리마를 건설하여 식민 통치의 중심지로 삼았다.

중동과 지중해 지역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가 이어졌다. 쉴레이만 1세가 이끄는 오스만 군대는 사파비 왕조와의 전쟁을 통해 바그다드를 완전히 장악하고 이라크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이로써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세계의 명실상부한 맹주로 자리매김했으며, 지중해 무역권을 장악하여 유럽 강대국들과의 외교 및 전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조선에서는 중종 30년에 해당하는 해로, 기묘사화 이후 사림 세력이 위축된 가운데 훈구파 내의 권력 투쟁이 지속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여진족과 왜구의 산발적인 침입에 대응하며 국방을 정비하던 시기였으며, 학문적으로는 퇴계 이황 등 후대 성리학의 거두들이 관직 생활을 하며 학문적 기틀을 닦고 있었다. 이 시기 조선은 내부적인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도 유교적 국가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