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4년(성종 5년)은 조선의 국가 기틀을 다지는 법전 편찬 사업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의 육전 체제가 완성되어 반포된 이른바 '갑오대전(甲午大典)'의 해이다. 세조 대부터 시작된 법전 편찬 작업이 성종 대에 이르러 일단락됨으로써 유교적 법치주의 국가로서의 행정 체계와 사회 질서가 확립되었다. 이 법전은 이후 조선 왕조가 유지되는 내내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는 최고의 성문법전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조선 왕실 내부적으로는 성종의 첫 번째 왕비인 공혜왕후 한씨가 1474년 4월에 승하하였다.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는 어린 나이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후사를 두지 못한 채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은 왕실에 큰 슬픔을 안겼을 뿐만 아니라, 이후 성종의 후계 구도와 왕실 정치 지형에 변화를 가져오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성종이 성인으로서 친정을 강화하며 사림 세력을 중앙 정계에 서서히 등용하기 시작하는 전조를 보인 시기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스페인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1474년 12월, 카스티야의 국왕 엔리케 4세가 사망하자 그의 이복동생인 이사벨 1세가 세고비아에서 카스티야의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는 카스티야 왕위 계승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결합을 통해 스페인 통일 왕국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다. 이사벨 1세의 즉위는 향후 레콘키스타의 완성과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지는 대항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외교와 무역 분야에서는 위트레흐트 조약(Treaty of Utrecht)이 체결되어 잉글랜드 왕국과 한자 동맹 사이의 오랜 상업적 갈등과 전쟁이 종결되었다. 이 조약을 통해 한자 동맹은 잉글랜드 내에서 누렸던 무역 특권을 회복하고 스테이플(Staple) 항구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았으며, 북유럽과 서유럽 간의 해상 교류가 다시 활성화되었다. 이는 중세 말기 유럽 경제 체제에서 상업 자본의 흐름과 도시 동맹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이다.
문화 및 지적 재산권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공화국은 1474년에 세계 최초의 현대적 특허법인 '베네치아 특허법'을 제정하였다. 이는 발명가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여 기술 혁신을 장려하려는 의도였으며, 근대적인 지식 재산권 개념이 형성되는 시초가 되었다.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리를 옹호한 스페인의 사제이자 역사가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가 이 해에 태어나는 등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친 인물의 탄생도 잇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