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3년은 율리우스력으로 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한국사에서 이 해는 조선 제4대 국왕인 세종 재위 25년에 해당하며,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가 이루어진 해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1443년 음력 12월에 친히 스물여덟 자의 언문(한글)을 만들었으며, 이는 백성들이 한자를 몰라 겪는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한 애민 정신의 발로였다. 이때 창제된 문자는 학자들의 연구와 3년의 시험 및 보완 기간을 거쳐 1446년에 공식적으로 반포되었다.
또한 같은 해 조선은 대일 외교 및 무역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계해조약(癸亥條約)을 체결했다. 세종은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종정성)와 협정을 맺어 삼포(제포, 부산포, 염포)를 개항하고 일본과의 교역 조건을 명문화했다. 이 조약에 따라 대마도주에게 하사하는 세사미두(歲賜米豆)는 200석으로, 무역을 위해 파견할 수 있는 세견선(歲遣船)은 50척으로 제한되었다. 이는 왜구의 약탈을 방지하고 합법적인 무역의 테두리 안에서 조선과 일본 간의 교류를 통제 및 안정화하려는 조선의 외교적 노력이 반영된 결과였다.
서양사에서 1443년은 오스만 제국의 팽창과 이에 맞서는 발칸반도 국가들의 저항이 격화되던 시기였다.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인 조지 카스트리오티 스칸데르베그는 오스만 제국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으며, 크루여 성을 함락시켜 알바니아 저항군의 거점으로 삼았다. 동시에 헝가리의 명장 야노슈 후냐디는 폴란드-헝가리 국왕 브와디스와프 3세와 함께 오스만 제국을 유럽에서 몰아내기 위한 이른바 '긴 원정(Long Campaign)'을 개시하여 발칸반도 일대에서 오스만군을 상대로 여러 차례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서유럽에서는 르네상스 문화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데 메디치가 실질적인 통치자로 군림하며 학문과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었다. 이 시기 유럽은 중세의 봉건적 질서에서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단계에 있었으며, 비잔티움 제국의 쇠퇴와 맞물려 고전 학문의 부흥과 함께 예술적, 지적 쇄신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1443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후대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동양에서는 조선의 훈민정음 창제를 통해 독자적이고 과학적인 문자 체계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제한적이나마 평화로운 교역의 규칙이 확립되었다. 서양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세력과 이에 대항하는 기독교 세력 간의 충돌이 유럽의 지정학적 지형을 요동치게 만들었으며, 이는 향후 동유럽 및 지중해 세계의 발전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