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1년

1421년은 15세기 초반의 평년으로, 세계사적으로 동아시아와 유럽에서 중요한 정치적, 군사적, 환경적 사건들이 일어난 해이다.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가 베이징으로 천도하며 새로운 제국 중심지의 도약을 알렸고, 한반도에서는 조선 세종의 통치가 안정화되어 가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 전투가 벌어졌으며, 최초의 현대적 특허권이 발급되는 등 제도의 발전도 있었다.

1421년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은 명나라 영락제에 의한 베이징(북경) 공식 천도이다. 영락제는 난징(남경)에 있던 수도를 자신의 군사적 기반이자 북방 방어에 유리한 베이징으로 옮기며, 자금성(紫禁城)을 공식적으로 완공하고 이를 축하하는 대규모 의식을 거행했다. 이 천도를 통해 명나라는 북방 민족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영락제의 팽창주의적 대외 정책을 공고히 했다. 또한, 같은 해 정화(鄭和)의 대규모 함대가 제6차 원정을 떠나 동남아시아와 인도양, 아프리카 동해안에 이르는 명나라의 해상 지배력과 외교적 위상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해 5월, 갓 완공된 자금성의 핵심 전각인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벼락으로 인해 전소되는 대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반도의 조선은 제4대 국왕인 세종 대왕의 재위 3년 차를 맞이한 해였다. 이 시기 세종은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태종의 군사적, 정치적 후원 아래 유교적 이상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내치에 집중했다. 조선 조정은 명나라의 베이징 천도와 자금성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하례 사신인 진하사(進賀使)를 파견하여 명나라와의 사대교린 외교 관계를 돈독히 유지했다. 또한 국내에서는 전년도에 설치된 집현전(集賢殿)을 중심으로 학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활자와 인쇄술의 개량, 향교를 통한 지방 교육의 강화 등 조선 전기 문화의 황금기를 준비하는 기틀이 다져지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1421년 3월에 벌어진 보제 전투(Battle of Baugé)에서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연합군은 잉글랜드 군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의 동생인 클래런스 공작 토머스가 전사하여 잉글랜드군의 기세가 크게 꺾였으며, 프랑스는 영토 회복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한편,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에서는 르네상스 건축의 거장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가 대리석 운반용 바지선을 발명하여 3년간의 독점권을 인정받았는데, 이는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근대적인 형태의 특허권 발급 사례로 평가받는다.

1421년은 유럽 자연재해 역사에서도 끔찍한 해로 기록되어 있다. 1421년 11월 18일에서 19일 사이, 네덜란드 지역에서 대규모 폭풍 해일이 발생하여 수많은 제방이 붕괴하는 이른바 '성 엘리자베스 홍수(St. Elizabeth's flood)'가 일어났다. 이 대홍수로 인해 수십 개의 마을이 완전히 수몰되었고, 최소 수천 명에서 최대 1만 명에 이르는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네덜란드 남서부의 지형을 영구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오늘날의 비스보스(Biesbosch) 국립공원 지역에 거대한 습지와 내해가 형성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