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1년은 고려의 국운이 다하고 새로운 왕조인 조선으로 이행하기 직전의 결정적인 시기였다. 이 해 가장 중요한 사건은 공양왕 3년 5월에 단행된 과전법(科田法)의 공포와 실시였다. 이 법은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대부 세력이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을 해체하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단행한 근본적인 토지 제도 개혁이었다. 이를 위해 기존의 복잡하고 부패한 토지 대장을 모두 불태우고, 관리들에게 직역의 대가로 경기도의 토지 수조권을 분배하는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역성혁명파의 권력이 정점에 달하며 구세력에 대한 숙청이 가속화되었다. 이성계 일파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장악하여 국정 전반을 주도하였으며, 군사적으로는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를 설치하여 분산되어 있던 군사 지휘권을 일원화하였다. 이는 고려 말의 혼란스러운 군제를 정비함과 동시에, 새로운 왕조 건국을 위한 군사적 기반을 완성하는 과정이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명나라의 홍무제가 제국의 기틀을 다지며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강화하고 있었다. 1391년 명나라는 전국적인 호구 조사를 바탕으로 조세 부과와 노동력 징발의 기초가 되는 부역황책(賦役黃冊)과 어린도책(魚鱗圖冊)을 정비하였다. 또한 황태자 주표가 섬서 지역을 시찰하며 천도를 검토하는 등 제국의 내실을 기하는 활동이 이어졌으나, 이는 명나라 내부의 정치적 역동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유력 수호 대명(슈고 다이묘) 세력을 억제하며 막부의 권위를 확립하고 있었다. 특히 1391년 말에는 강력한 세력을 보유했던 야마나 가문이 막부에 반기를 든 '메이토쿠의 난'이 발생하였다. 요시미쓰는 이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함으로써 슈고 다이묘들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켰고, 이는 이듬해 일본의 오랜 분열기였던 남북조 시대를 종식시키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서양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나타났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마누엘 2세 팔라이올로고스가 황제로 즉위하여 오스만 제국의 거센 압박 속에서 제국의 존속을 위해 분투하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정복자 티무르가 킵차크 칸국의 톡타미시를 상대로 쿤두르차 강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티무르 제국의 세력을 북방으로 확장시키는 동시에 유라시아 대륙의 정치 지형을 크게 변화시킨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