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0년

1370년은 14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연도로, 동아시아와 세계 역사에서 기존의 제국들이 붕괴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가 확립되는 중요한 전환기였다. 한반도의 고려에서는 공민왕이 재위하며 반원 자주 정책을 펼치던 시기였고, 중국 대륙에서는 신흥 국가인 명나라가 북쪽으로 쫓겨난 원나라의 잔존 세력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서아시아에서는 티무르 제국이 공식적으로 출범하여 새로운 패권의 등장을 알렸으며, 유럽에서는 백년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다양한 정치적, 종교적 변화가 일어났다.

고려는 이 해에 원나라의 쇠퇴를 틈타 옛 영토 수복과 북방 국경의 안정을 위해 제1차 요동 정벌을 단행했다. 1370년 1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 원정에서 이성계와 지용수 등이 이끄는 고려군은 압록강을 건너 요동 지역으로 진군했다. 특히 이성계는 원나라의 동녕부가 있던 요양(遼陽)과 오녀산성(우루산성)을 공격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비록 군량미 부족과 혹한으로 인해 해당 지역을 영구적으로 점령하지는 못하고 철군했으나, 이 원정은 고려가 과거 고구려의 옛 영토에 대한 연고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북방의 잔존 친원 세력을 크게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군사적, 외교적 의의가 크다.

또한 1370년은 고려가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공식적으로 수립하고 친명배원(親明排元) 정책을 확고히 한 해이기도 하다. 공민왕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으로부터 고려 국왕으로 정식 책봉을 받았으며, 명나라가 제정한 역법인 대통력(大統曆)을 받아들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고려가 종전까지 유지해 오던 원나라와의 제후국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새롭게 중원의 패자로 떠오른 명나라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편입되었음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상징적인 조치였다.

중국 대륙과 몽골 초원의 정세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다. 1368년 명나라 건국 직후 대도(베이징)를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쳤던 원나라의 마지막 중원 지배자 토곤 테무르(순제)가 1370년 응창부에서 사망했다. 그의 아들 아유시리다르(소종)가 북원의 새로운 카안으로 즉위하여 몽골 초원 지역에서 명나라에 대한 항전을 이어갔다. 이에 대응하여 명나라는 서달(徐達) 등 명장들을 파견해 몽골의 잔존 세력을 토벌하는 북벌을 계속 추진하였고, 이를 통해 중원 대륙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

서아시아와 유럽에서도 역사적인 사건들이 발생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몽골 제국의 부흥을 천명한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삼고 티무르 제국을 공식적으로 건국하며 대대적인 정복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유럽에서는 한자 동맹과 덴마크 간의 전쟁을 종결짓는 슈트랄준트 조약이 체결되었고, 이로써 한자 동맹이 북유럽 무역의 독점권과 정치적 패권을 쥐며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아울러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로마로 귀환했던 교황 우르바노 5세가 다시 아비뇽으로 돌아간 직후 선종하고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선출되는 등 로마 가톨릭 교회의 혼란도 지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