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0년

1360년은 고려 공민왕 9년이자 원나라 지정 20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에서 원나라의 지배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던 대전환기였으며, 서구에서는 백년전쟁의 중요한 분기점이 마련된 해였다. 전 세계적으로 기존의 중세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국가 체제가 태동하는 혼란과 변화의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고려에서는 전년인 1359년에 발생한 홍건적의 제1차 침입을 격퇴한 이후, 전후 복구와 국방 강화에 주력하던 시기였다. 비록 홍건적을 일시적으로 몰아냈으나 그 위협은 여전히 잔존해 있었으며, 남해안 일대에서는 왜구의 침탈이 빈번하여 국가 재정과 민생에 큰 타격을 주었다. 공민왕은 이러한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원 자주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며, 내부적으로는 권문세족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의 기틀을 다졌다.

중국 대륙에서는 원나라의 통제력이 사실상 상실된 가운데, 주원장과 진우량 등 여러 군웅 세력 간의 패권 다툼이 격렬해졌다. 특히 1360년에는 주원장군과 진우량군 사이에 용만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주원장은 수적으로 우세했던 진우량의 대군을 유인하여 격파함으로써 강남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는 훗날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고 대륙을 통일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전략적 승리로 평가받는다.

서유럽에서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전기를 맞이하였다. 양국은 1360년 5월에 브레티니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을 통해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는 대신 아키텐 등 프랑스 서남부 영토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인정받았으며, 푸아티에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던 프랑스 왕 장 2세는 막대한 몸값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이 조약은 백년전쟁의 제1기를 마무리 짓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기존 왕조의 쇠퇴와 신흥 세력의 성장이 관찰되었다. 동남아시아의 자바섬에서는 마자파힛 제국이 전성기를 누리며 해상 무역권을 장악해 나갔고, 중앙아시아에서는 훗날 티무르 제국을 건설하게 될 티무르가 두글라트 가문의 침공을 틈타 정치적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1360년은 전 지구적으로 낡은 권위가 해체되고 새로운 세력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재편의 과정이 가속화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