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8년은 중세 말기 유럽과 동아시아 전역에서 사회적 격변과 정치적 재편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서유럽에서는 백년전쟁의 여파로 프랑스 농민들이 대규모 봉기를 일으킨 '자크리의 난'이 발생했다. 1356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프랑스 국왕 장 2세가 잉글랜드군의 포로가 된 후,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한 과도한 세금 징수와 귀족들의 수탈에 분노한 농민들이 봉기한 것이다. 5월에 시작된 이 반란은 파리 근교를 중심으로 확산되었으나, 귀족 세력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수만 명의 농민이 학살당하며 단기간에 종결되었다.
중부와 북부 유럽에서는 상업과 외교 분야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1358년 뤼베크에서는 한자 동맹의 첫 번째 전체 회의가 개최되어 동맹의 조직적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는 북유럽 상업권을 장악하려는 도시 국가들의 연합체인 한자 동맹이 공식적인 결속력을 강화한 계기가 되었다. 한편, 아드리아해 연안에서는 자다르 조약이 체결되어 베네치아 공화국이 달마티아 해안의 통제권을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에 양도했다. 이 조약은 라구사 공화국이 실질적인 자치를 누리며 번영하는 발판이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원나라의 쇠퇴와 홍건적의 세력 확장이 가속화되었다. 주원장은 남경을 거점으로 세력을 공고히 하며 훗날 명나라 건국의 기초를 닦았고, 다른 홍건적 분파들은 원나라의 통제력이 약해진 틈을 타 산둥 반도와 하북 지방을 장악해 나갔다. 1358년에는 홍건적이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를 위협할 정도로 세력을 확장했으며, 이러한 혼란은 곧 주변국인 고려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고려 공민왕 7년인 1358년, 고려는 안팎으로 심각한 군사적 도전과 직면해 있었다. 남쪽 해안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으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 최영 등 무장들이 파견되었다. 특히 최영은 오예포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며 큰 전공을 세웠다. 동시에 북쪽에서는 홍건적의 위협이 고조되어 고려 조정은 국경 방비에 주력해야 했다. 공민왕은 이러한 대외적 위기 속에서도 부패한 권문세족을 견제하고 반원 자주 정책을 유지하며 내부 개혁을 시도했다.
이처럼 1358년은 전 세계적으로 기존의 봉건적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던 전환기적 시기였다. 유럽의 농민 봉기와 도시 상인들의 연합, 그리고 동아시아의 왕조 교체 징후와 고려의 대외 항쟁은 각 지역의 역사가 중세에서 다음 단계로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겪은 진통과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