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7

1327년은 14세기 전반의 주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다수 발생한 해이다. 서유럽에서는 잉글랜드 왕국의 정세가 급변하였다. 1월, 의회에 의해 폐위된 에드워드 2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에드워드 3세가 14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에드워드 2세는 같은 해 9월 버클리 성에서 의문사하였으며, 이는 잉글랜드 왕실의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에드워드 3세의 즉위는 향후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으로 이어지는 서막이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과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황제 루드비히 4세와 교황 요한 22세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루드비히 4세는 이탈리아 원정을 단행하여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는 교황의 승인 없이 황제의 권위를 세우려는 시도였으며, 세속 권력과 교황권 사이의 대립을 표면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오컴의 윌리엄과 같은 학자들이 황제를 지지하며 교황의 절대권에 도전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동유럽의 루스 공국들 사이에서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트베리에서 킵차크 칸국의 징세관들에 대항하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으나, 모스크바의 이반 1세는 칸국의 군대와 합세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반 1세는 킵차크 칸으로부터 징세권을 위임받아 '대공'의 지위를 굳혔으며, 모스크바가 루스 지역의 정치적 중심지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가 유지되는 가운데 내부적인 변화가 이어졌다. 고려에서는 충숙왕이 재위하며 원나라의 간섭 아래 정국을 운영했으나, 왕실 내부의 갈등과 심양왕 세력의 견제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원나라에서는 태정제가 통치하며 외견상의 안정을 유지했으나, 지배층 내부의 분열과 경제적 모순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안드로니코스 2세와 그의 손자 안드로니코스 3세 사이의 내전이 격화되어 제국의 국력이 크게 소모되었다. 이러한 내부 분열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오스만 투르크가 비잔티움의 영토를 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편, 서아프리카의 말리 제국은 만사 무사의 통치 아래 황금기를 구가하며 이슬람 문화와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