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4

1284년은 13세기의 후반기에 해당하는 해로, 율리우스력 기준으로 토요일에 시작된 평년이다. 이 해는 유럽의 정치적 재편과 해상 패권의 변화, 그리고 문화적 전설이 시작된 시기로 기록되어 있다. 중세 사회가 봉건제에서 점차 중앙집권적 국가 형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중요한 사건들이 다수 존재한다.

지중해에서는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둘러싼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 사이의 격돌이 정점에 달했다. 1284년 8월 6일, 제노바 공화국과 피사 공화국 사이에서 멜로리아 전투(Battle of Meloria)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제노바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피사의 해상 전력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를 계기로 피사는 지중해의 주요 해상 강대국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고, 제노바는 지중해 서부의 패권을 장악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영국 제도에서는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를 완전히 병합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3월 3일 선포된 러들런 법령(Statute of Rhuddlan)을 통해 웨일스는 잉글랜드 왕국의 행정 체계 안으로 편입되었다. 같은 해 4월 25일에는 에드워드 1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2세가 웨일스의 카나번 성에서 태어났다. 훗날 에드워드 2세는 잉글랜드 왕위 계승자에게 부여되는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이라는 칭호를 최초로 사용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유럽의 경제적 측면에서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금화인 '두카트(Ducat)'를 처음으로 주조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 두카트는 높은 금 함유량과 일관된 품질 덕분에 신뢰를 얻었으며, 이후 수 세기 동안 지중해와 유럽 전역에서 국제 교역의 표준 통화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베네치아가 상업 공화국으로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핵심적인 기반이 되었다.

독일의 하멜른 지역에서는 전설적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사건이 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멜른의 시 기록에 따르면 1284년 6월 26일,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마을의 아이들 130명이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는 전염병으로 인한 집단 사망, 아동 십자군 참여, 또는 동유럽으로의 집단 이주 등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 존재하나, 민담으로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시점은 바로 이 해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려 충렬왕 10년에 해당하며,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시기였다. 몽골 제국(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은 일본 원정을 중단하고 제국의 내실을 다지는 한편, 동남아시아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었다. 당시 고려는 부마국으로서 원나라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대륙의 문물이 유입되는 동시에 몽골의 요구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지고 있던 시기였다.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10세가 서거하고 산초 4세가 왕위를 계승하며 국왕과 귀족 간의 갈등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