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3년은 13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해로,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몽골 제국의 팽창과 그에 따른 국제 질서의 재편이 가속화되던 시기였다. 몽골의 제4대 대칸인 몽케 칸은 동생인 쿠빌라이와 훌라구에게 각각 동아시아 남부와 서아시아 정벌을 명령하며 제국의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253년은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중대한 군사적, 정치적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 전환점이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몽골군이 운남 지역의 대리국(大理國)을 침공하여 멸망시켰다. 쿠빌라이가 이끄는 몽골군은 험준한 지형을 극복하고 대리국의 수도를 점령했으며, 이는 몽골이 남송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적 우회로를 확보했음을 의미했다. 같은 해 한반도에서는 고려를 향한 몽골의 제5차 침입이 시작되었다. 몽골 장수 에쿠(也窟)가 이끄는 대군이 고려를 침공하여 충주성 등 주요 거점을 공격했으나, 김윤후와 고려 민중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이 전쟁은 고려 국토를 황폐화시켰으나 동시에 몽골에 대항하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아시아 지역에서는 훌라구 칸의 서방 원정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몽케 칸의 명을 받은 훌라구는 이슬람 세계의 정복을 목표로 대규모 원정군을 조직하여 서진하기 시작했다. 이 원정의 일차적 목표 중 하나는 당시 악명 높았던 암살교단(아사신 파)의 요새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1253년에 시작된 이 군사 행동은 훗날 바그다드의 함락과 아바스 왕조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대사건의 서막이었으며, 중동 지역의 정치 및 종교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유럽에서는 종교와 외교 분야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프랑스의 루이 9세가 파견한 수도사 윌리엄 루브룩(William of Rubruck)이 몽골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을 향한 긴 여정을 시작했다. 루브룩의 여행은 몽골 제국과의 동맹 가능성을 탐색하고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며, 그가 남긴 기록은 당시 몽골의 풍습과 지리를 서구에 알리는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한편, 이탈리아 아시시에서는 성 프란치스코의 동료이자 글라라 수도회의 설립자인 성녀 글라라가 8월 11일에 선종하였다. 교황 이노센트 4세는 그녀의 임종 직전 수도회 규칙을 승인하며 그녀의 업적을 기렸다.
이 시기 유럽의 정치 상황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요절 이후 대공위 시대의 혼란으로 치닫고 있었다. 독일과 이탈리아 내에서는 교황파(구엘프)와 황제파(기벨린) 사이의 갈등이 지속되었으며, 각 지역의 영주들과 도시 국가들은 권력의 공백을 틈타 세력을 확장하려 시도했다. 1253년은 이처럼 몽골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유라시아의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연결망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국가들이 생존과 확장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던 격변의 해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