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목(十二牧)은 고려 시대 성종이 지방 행정 체제를 정비하며 전국 주요 거점에 설치한 12개의 행정 구역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 역사에서 중앙 정부가 지방에 정식 관리를 파견한 최초의 본격적인 사례로 평가받으며, 고려의 통치 체제가 중앙 집권적 관료 국가로 이행하는 데 결정적인 기틀이 되었다. 성종 2년(983년)에 시행된 이 제도는 고려 초기 지방 사회에 잔존하던 호족 세력을 통제하고 국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이 제도의 수립에는 유학자 최승로의 정치적 제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최승로는 '시무 28조'를 통해 지방관 파견의 시급성을 역설하였으며, 성종은 이를 전격 수용하여 전국 주요 요충지에 12개의 목을 설치하였다. 당시 선정된 지역은 양주, 광주, 충주, 청주, 공주, 진주, 상주, 전주, 나주, 승주, 해주, 황주였으며, 이들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각 목에는 중앙 정부에서 임명한 '목사(牧使)'가 파견되어 해당 지역의 행정, 사법, 군사를 총괄하였다.
12목의 설치와 목사의 파견은 지방 사회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까지 각 지역에서 독자적인 자치권을 행사하던 호족들은 그 권한이 대폭 축소되었으며, 중앙에서 내려온 목사의 지휘를 받는 하급 관리인 향리(鄕吏) 체계로 재편되었다. 이를 통해 중앙 정부는 지방의 조세 징수와 노동력 동원을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호족들의 사적 무력을 무력화하여 왕권을 공고히 다지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12목은 단순한 행정 단위를 넘어 문화와 교육의 전파 거점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중앙 정부는 각 목에 경학박사(經學博士)와 의학박사(醫學博士)를 한 명씩 파견하여 지방 인재들에게 유교 경전과 의술을 가르치게 하였다. 이는 중앙의 선진적인 유교 문화를 지방까지 확산시켜 전국적인 통치 이념의 통합을 꾀하려는 의도였으며, 유교적 소양을 갖춘 예비 관료 집단을 지방에서도 양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12목 체제는 이후 현종 9년(1018년)에 대대적인 지방 행정 개편이 이루어지며 5도 양계 체제로 변모하게 된다. 비록 12목이라는 구체적인 명칭과 숫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8목으로 축소되는 등 변화를 겪었으나, 이때 확립된 지방관 파견 원칙은 한국 지방 행정 제도의 근간이 되어 조선 시대까지 계승되었다. 12목은 고려가 지방 분권적 성격을 극복하고 일원화된 행정 체계를 갖춘 중앙 집권 국가로 발돋움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