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13년은 로마 제국의 황제 트라야누스 치세의 전성기에 해당한다. 이 해에 로마에서는 트라야누스의 다치아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트라야누스 원주가 완공되어 헌정되었다. 이 기념비는 높이 약 30미터에 달하며, 나선형의 부조를 통해 전쟁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당시 로마군의 무장과 전술을 파악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 평가받는다.
로마와 파르티아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트라야누스 황제는 파르티아 원정을 위해 로마를 떠났다. 파르티아가 로마의 영향권 아래 있던 아르메니아의 왕위를 임의로 교체한 것이 개전의 주요 원인이었다. 트라야누스는 먼저 안티오크에 도착하여 군대를 정비하였으며, 이는 이후 몇 년간 지속된 대규모 동방 원정의 서막이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후한의 안제가 재위 중이었으나, 실권은 화제의 황후였던 등태후가 섭정으로서 행사하고 있었다. 이 시기 후한은 서역 방면의 통제권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강족의 반란 등으로 인한 치안 불안과 재정 압박을 겪고 있었다. 등태후는 검약 정책을 펴고 유학 교육을 장려하며 정국을 안정시키려 시도하였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각자의 영토와 체제를 정비하고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태조대왕이 재위하며 중앙 집권화를 지속하고 있었고, 백제는 기루왕이 통치하며 주변국과의 관계를 관리했다. 신라에서는 지마 이사금이 즉위한 지 2년째 되는 해로, 내부 체제 정비와 함께 가야 및 왜와의 관계 설정에 주력하며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113년경의 세계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로마 제국과 동아시아의 후한이 강력한 제국 체제를 유지하며 문명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 비단길을 통한 간접적인 교류가 이어졌으나, 각 지역의 강대국들은 국경 분쟁과 영토 확장을 위한 군사적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