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8년은 12세기 초반의 시기로, 중세 유럽과 비잔티움 제국, 그리고 중동 지역에서 통치권의 교체가 빈번하게 일어난 해였다. 유럽의 정치적 지형뿐만 아니라 십자군 국가들의 운명에도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으며, 동아시아에서는 금나라의 부상과 요나라의 쇠퇴가 가속화되던 시점이었다. 이 해에 발생한 사건들은 이후 중세 성기의 정세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제국의 중흥을 이끌었던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가 8월에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요한네스 2세 콤네노스가 황제로 즉위했다. 요한네스 2세는 부왕이 다져놓은 기반 위에서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행정 체계를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즉위 과정에서는 누이인 안나 콤네나의 권력 투쟁이 있었으나, 요한네스 2세는 이를 진압하고 안정적으로 제위를 계승하여 콤네노스 왕조의 황금기를 이어갔다.
서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레콘키스타(국토 회복 운동)의 역사적인 진전이 있었다. 아라곤 왕국의 알폰소 1세는 이슬람 세력의 거점이었던 사라고사를 장기간의 공성전 끝에 점령했다. 사라고사의 함락은 에브로 강 유역의 주도권이 기독교 왕국으로 넘어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아라곤 왕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신성 로마 제국 간의 갈등인 서임권 투쟁도 이 시기에 계속되었다. 교황 파스칼 2세가 1월에 타계하자 젤라시오 2세가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5세는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립 교황 그레고리오 8세를 옹립했다. 이로 인해 젤라시오 2세는 로마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으며, 교회와 세력 간의 혼란은 지속되었다.
중동의 십자군 국가인 예루살렘 왕국에서는 건국 초기의 지도자였던 보두앵 1세가 이집트 원정 중에 병사했다. 보두앵 1세는 후사가 없었기에 그의 사촌인 에데사 백작 보두앵 2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보두앵 2세는 즉위 직후부터 주변 이슬람 세력의 반격에 맞서 왕국을 수호해야 했으며, 안티오키아 공국을 비롯한 인근 십자군 영지들의 섭정 역할을 수행하며 세력을 공고히 했다.
동아시아의 고려에서는 예종 13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 고려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급격한 성장을 경계하며 북방 방어에 힘썼다. 금나라 태조 아구다는 요나라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며 만주 일대의 패권을 장악해 나갔으며, 이는 고려의 외교 정책에 큰 과제를 던져주었다. 고려 내부적으로는 예종의 문치주의 정책이 이어지며 국자감을 정비하고 학문을 장려하는 등 문화적 발전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