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1년은 서기 1061년으로, 고려 시대에는 제11대 국왕인 문종이 재위한 지 15년째 되는 해이다. 육십갑자로는 신축(辛丑)년이며,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중세 국가의 기틀을 다지거나 새로운 권력 구조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이 해는 동아시아의 안정적인 외교 관계 속에서 문화적 성장이 지속되었고, 유럽에서는 종교적 권위와 세속 권력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고려에서는 문종의 치세 아래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가 공고해지던 시기였다. 문종 15년인 이 해에 고려는 불교를 국가적 신앙으로 장려하며 다양한 사찰의 정비와 불교 행사를 진행하였다. 특히 문종은 유교적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관리 등용 제도를 정비하고 문물을 진흥시켜 고려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대외적으로는 송나라와의 실리적 외교를 유지하는 한편, 북방의 요나라와도 평화적인 관계를 이어가며 국제적인 안정세를 유지했다.
유럽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1061년 7월 교황 니콜라오 2세가 서거하자, 뒤를 이어 안셀모 디 바조가 교황 알렉산데르 2세로 즉위하였다. 이는 1059년에 제정된 교황 선출 칙령에 따라 추기경들에 의해 교황이 선출된 초기 사례 중 하나였다. 이 과정에서 신성 로마 제국 측이 지지한 대립교황 호노리오 2세와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알렉산데르 2세의 즉위는 교회 개혁 운동과 교황권 독립의 흐름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지중해와 남부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노르만족의 세력 확장이 본격화되었다. 로베르 기스카르와 그의 동생 루제로 1세가 이끄는 노르만 군대는 시칠리아 섬의 메시나를 점령하였다. 이는 당시 이슬람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시칠리아 섬을 탈환하기 위한 정복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훗날 시칠리아 왕국이 건설되는 역사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 사건은 지중해 패권이 이슬람 세력에서 기독교 노르만 세력으로 이동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중국의 송나라는 인종(仁宗) 재위 말기인 가우 6년에 해당하였다. 송나라는 북방의 요나라와 서하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대규모 전쟁을 피하며 내치에 힘쓰고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인 평화로 인해 관료 기구의 비대화와 군사비 지출 증가라는 재정적 난제에 직면해 있었으며, 이는 훗날 왕안석을 중심으로 한 신법 당쟁과 개혁의 배경이 되었다. 이 시기의 송나라는 경제적 풍요와 문사 관료 중심의 문화가 절정에 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