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4년은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해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2세가 7월에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오토 왕조가 단절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 제후들은 9월에 콘라트 2세를 새로운 국왕으로 선출하였으며, 이는 살리에르 왕조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콘라트 2세의 즉위는 제국 내 권력 구조의 변화와 중앙 집권화를 추진하는 발판이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바실리우스 2세의 치세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그는 불가리아를 완전히 정복하고 제국의 영토를 유스티니아누스 1세 이후 최대 수준으로 확장한 상태였으며, 1024년에도 제국의 영향력은 지중해 동부와 발칸반도 전역에 강력하게 미치고 있었다. 제국은 군사적 전성기를 구가하며 주변 세력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도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갔다.
이슬람 세계와 남아시아에서는 가즈나 왕조의 마무드가 인도 북부로의 침공을 지속했다. 특히 1024년경부터 준비된 솜나트 사원에 대한 원정은 그의 군사적 성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원정은 힌두교 사원의 막대한 재물을 약탈하는 동시에 이슬람교의 세력을 인도 내륙으로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는 지역의 종교적 및 정치적 지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려 왕조에서는 현종의 통치 아래 여요 전쟁 이후의 전후 복구와 체제 정비가 진행되었다. 거란과의 대규모 전쟁이 종결된 후, 고려는 송나라 및 요나라와 다각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꾀했다. 국가 내부적으로는 불교 문화를 장려하고 전란으로 파괴된 사찰을 중건하는 등 민심을 수습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중국의 송나라에서는 인종의 치세 아래 경제적, 문화적 성장이 지속되었다. 특히 세계 최초의 지폐로 평가받는 '교자(交子)'가 사천 지역에서 관고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한 시기적 배경과 맞물려 상업 경제의 발달이 두드러졌다. 이는 금속 화폐의 한계를 극복하고 유통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시도였으며, 당시 송나라의 진보된 경제 체제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