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년

1012년은 고려 현종 3년이자 북송 대중상부 5년, 요나라 통화 30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제2차 여요전쟁 직후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었으며, 유럽과 중동에서도 제국의 팽창과 내부적 정치 변화가 활발히 일어났던 시기이다. 이 해는 특히 고려와 거란(요나라) 사이의 외교적 마찰이 심화되며 차후의 대규모 충돌을 예고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고려 내부적으로는 전쟁의 상흔을 복구하고 국방을 재정비하는 데 주력한 해였다. 거란의 성종은 제2차 여요전쟁의 종결 조건이었던 고려 현종의 친조(직접 방문하여 알현함)를 이행하라고 강력히 압박했다. 이에 고려는 현종이 병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친조가 불가능함을 통보했으나, 거란은 이를 거부하고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하는 사신을 보냈다. 현종은 이러한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며 거란과의 외교적 대립각을 세웠고, 동북면 일대에서 여진족의 침입을 격퇴하며 국경 수비를 강화했다.

중국 본토의 북송에서는 진종이 재위하며 도교적 권위를 강화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진종은 '천서(天書)'가 강림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봉선 의식을 거행하고 대규모 사찰과 도관을 건립하며 황권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행사는 국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주기도 했다. 요나라는 고려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는 한편, 서하를 비롯한 주변 세력과의 관계를 관리하며 동북아시아의 패권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 중기로, 산조 천황이 즉위한 지 2년째 되는 해였다. 당시 정권의 실세였던 후지와라 노 미치나가는 자신의 딸을 천황의 중궁으로 들이며 섭관 정치의 정점에 군림하고 있었다. 귀족 중심의 화려한 국풍 문화가 절정에 달했으나, 지방에서는 점차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무사 계급이 실질적인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는 사회적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유럽과 지중해 세계에서는 비잔티움 제국의 바실리오스 2세가 불가리아 제국과의 전쟁을 지속하며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하인리히 2세가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교황권과의 관계를 조율하고 제국 내 반란 세력을 진압하며 중앙 집권적 통치력을 강화했다. 중동의 파티마 왕조에서는 칼리파 알 하킴이 독단적인 통치와 종교적 정책을 이어가며 이슬람 세계 내외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