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식 총류탄발사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 육군이 개발하여 사용한 보병용 화기 부속 장치이다. 황기 2600년인 1940년에 채택되었기에 '100식'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으며, 주로 38식 보총이나 99식 소총의 총구 부분에 장착하여 사용했다. 이 장치는 보병 분대의 화력을 보강하고 수류탄보다 먼 거리에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이 발사기는 이른바 '컵형' 발사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총구에 원통형의 발사관을 고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100식 총류탄발사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일반적인 총류탄 발사기와 달리 전용 공포탄을 사용할 필요 없이 일반 실탄을 그대로 사용하여 유탄을 발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발사기 내부에는 실탄의 탄환이 통과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으며, 탄환이 통과할 때 발생하는 연소 가스의 일부를 유도하여 유탄을 밀어내는 가스 트랩 방식을 채용했다. 이를 통해 병사는 긴박한 전투 상황에서 탄약을 교체하는 번거로움 없이 즉각적으로 유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사용되는 유탄은 주로 99식 수류탄을 개량한 99식 소총유탄이었다. 수류탄 본체에 별도의 추진체나 안정익을 달지 않고 그대로 발사관 안에 집어넣는 형태였으며, 발사 시 가스의 압력을 받아 비행했다. 발사된 유탄은 목표 지점에 도달한 후 충격 신관이나 지연 신관에 의해 폭발하여 인마 살상 및 적 진지 타격 등의 효과를 냈다. 하지만 안정익이 없는 구형 수류탄 형태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비행 궤도가 불안정하고 사거리와 명중률이 낮다는 한계가 있었다.
일본군은 이전에도 91식 총류탄기 등 유사한 장비를 운용했으나, 100식은 구조가 단순하고 실탄 사용이 가능하다는 편의성 덕분에 전쟁 전반에 걸쳐 널리 보급되었다. 그러나 일본군 보병의 강력한 지원 화기였던 89식 중척탄통에 비해서는 화력과 사거리가 현저히 떨어졌다. 이로 인해 소대급 지원 화기인 척탄통과 보병 개개인의 수류탄 투척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전쟁 후반기로 접어들며 일본의 공업 생산력이 저하됨에 따라 100식 총류탄발사기의 생산 품질 또한 조악해졌으며, 연합군의 압도적인 화력 체계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전쟁의 여러 전선에서 일본군 보병 분대의 곡사 화력 자산으로 꾸준히 활용되었다. 오늘날 이 무기는 당시 일본 제국 육군이 추구했던 병기 개발의 특이성과 실전에서의 전술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