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척의 배

1만 척의 배는 조지 R.R. 마틴의 판타지 소설 시리즈 '얼음과 불의 노래' 세계관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함대다. 이 함대는 에소스 대륙의 로인인들이 발리리아 자유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공주 니메리아의 지휘 아래 서쪽으로 탈출하며 조직되었다. 당시 로인인들은 거대한 용을 앞세운 발리리아의 공격으로 고향인 로인 강 유역의 도시들이 파괴되자 민족의 생존을 위해 남은 백성들을 배에 태워 바다로 나아갔다.

함대의 규모는 이름 그대로 약 1만 척에 달했다고 전해지나, 그 구성은 매우 다양했다. 전장에서 사용되던 군함뿐만 아니라 어선, 유람선, 무역선, 심지어는 강에서 쓰던 뗏목까지 동원된 거대한 피난 행렬이었다. 이 함대에는 전문적인 전사들보다 부녀자와 아이들, 노약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는 고향을 잃은 한 민족 전체가 이주하는 처절한 과정을 상징한다.

니메리아가 이끄는 함대는 새로운 정착지를 찾기 위해 수년 동안 고난의 항해를 이어갔다. 이들은 나스 섬과 소토리오스 대륙 등 여러 지역에 상륙을 시도했으나, 낯선 환경에서의 전염병과 기근, 원주민의 공격, 해적들의 위협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 긴 방랑의 과정에서 함대의 숫자는 처음보다 크게 줄어들었으며, 많은 로인인이 항해를 포기하거나 목숨을 잃었다.

오랜 방랑 끝에 함대는 마침내 웨스테로스 대륙의 남단인 도르네의 서니스피어 인근에 도착했다. 니메리아는 현지의 유력 영주였던 모스 마르텔과 혼인 동맹을 맺어 세력을 규합했다. 그녀는 도르네에 상륙한 직후 자신의 함대를 모두 불태우는 결단을 내렸다. 이는 백성들에게 더 이상 돌아갈 고향이 없음을 선언하고, 도르네를 영원한 새로운 정착지로 삼아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행위였다.

1만 척의 배가 가져온 대규모 이주는 도르네의 정치와 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로인인의 풍습이 유입되면서 도르네는 웨스테로스의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독특한 사회적 특성을 갖게 되었다. 특히 여성의 상속권을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하는 법적 체계와 영주 대신 '대공'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전통은 니메리아와 그녀의 함대가 남긴 가장 뚜렷한 역사적 유산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