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강왕(熙康王, ? - 930년)은 고려의 제7대 왕으로, 본명은 왕건의 6남 중 하나인 왕제이다. 928년에 즉위하였으며, 명성왕의 형제들 중 한 명으로, 그는 역사적으로 고려의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희강왕의 통치 기간은 정치적 혼란과 외침이 겹치는 시기로 평가받는다. 당시 고려는 후고구려와 후백제의 세력이 강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희강왕은 즉위 후, 여러 외세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정치적 결속을 다지려 하였다. 그러나 그가 통치하는 동안, 권력 다툼 및 내분이 심각해져 중앙 정부의 통제가 어려웠다. 이로 인해 여러 지방 세력과의 갈등이 깊어졌고, 국가의 안정화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정국 속에서 희강왕은 중앙 정부의 기능을 회복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통치 아래에서 고려는 외부의 침략뿐만 아니라 내부의 분열로 인한 위기에도 직면하였다. 930년에는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한 내분이 발생하여, 후에 왕건의 다른 아들인 왕현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그의 통치가 짧고 혼란스럽긴 했지만, 희강왕은 고려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통치 기간은 고려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다.
또한, 희강왕의 통치는 후에 왕건이 고려를 통일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희강왕의 정치적 유산은 단기적이며 불안정했지만, 그가 시도했던 중앙 집권적 노력이 이후 고려 태조로서의 왕건의 통치에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희강왕은 고려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