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제(洪熙帝, 1378년 ~ 1425년)는 명나라의 제4대 황제로, 성은 주(朱), 이름은 고치(高熾)이다. 영락제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묘호는 인종(仁宗), 시호는 경천도도순성지덕홍문흠무장성공헌간황제(敬天道道純誠至德洪文欽武章聖恭獻簡皇帝)이다. 1424년부터 1425년까지 약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재위했으나, 명나라의 내치를 다지고 전성기인 '홍선지치(洪宣之治)'의 기틀을 마련한 군주로 평가받는다.
홍희제는 부친인 영락제와 성격과 기질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무용을 중시하고 대외 원정에 힘썼던 영락제와 달리, 홍희제는 유교적 소양을 갖춘 온화한 문인 기질의 소유자였다. 그는 신체적으로 비대하고 다리가 불편하여 무예에는 소질이 없었으나, 학문을 즐기고 신료들과 소통하는 데 능했다. 영락제가 북방 원정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북경에 남아 대리청정을 수행하며 국정 운영 능력을 검증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관료 사회의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
1424년 영락제가 서거한 후 황제로 즉위한 홍희제는 부친의 과도한 팽창주의 정책으로 인해 피폐해진 민생을 돌보는 데 주력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정화의 대항해를 중단시키고, 과도한 조공 요구와 대규모 토목 공사를 중지하여 국가 재정 부담을 줄였다. 또한 영락제 시기에 숙청되었던 건문제 시기의 신료들을 복권시키고 유배된 자들을 사면하는 등 관용적인 정치를 펼쳐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경제 정책 면에서도 홍희제는 백성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를 취했다. 세금을 감면하고 기근이 발생한 지역에 곡물을 방출하여 구휼에 힘썼으며,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여 법 집행의 공정성을 높였다. 유교적 이상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한림원 학사들을 중용하고 내각의 권한을 강화했는데, 이는 명나라 황제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루는 정치 체제의 정착으로 이어졌다.
홍희제는 재위 9개월 만인 1425년 5월에 병으로 급서했다. 재위 기간은 매우 짧았으나 그가 단행한 개혁과 민생 안정 정책은 아들인 선덕제에게 계승되어 명나라의 황금기인 '홍선지치'를 완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그는 명나라 황제들 중 가장 인자하고 현명한 성군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지나치게 경직되었던 영락제 시기의 정치를 유연하게 변화시켜 제국의 수명을 연장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