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선(Chaotic Good)은 TRPG 시스템인 《던전앤드래곤 시리즈》(D&D)의 가치관 시스템 중 하나로, 도덕적으로는 '선(Good)'을, 규범적으로는 '혼돈(Chaotic)'을 추구하는 성향을 일컫는다. 이 가치관을 지닌 인물은 타인에 대한 동정심과 이타주의를 바탕으로 행동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규칙, 법률, 전통 등에는 강한 반감을 드러낸다. 즉,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기존의 체제나 규율을 무시하거나 파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이들의 행동 원리는 외부의 법전이나 사회적 권위가 아닌 철저히 개인의 내면적 양심에 기초한다. 혼돈 선 성향의 인물은 사회의 법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법 자체가 부패하거나 진정한 선을 가로막는다면 주저 없이 그 법을 어긴다. 이들에게 있어 형식적인 절차나 엄격한 규칙은 선행을 베푸는 데 방해가 되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은 불의를 목격했을 때 합법적인 구제 수단을 기다리기보다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사회적 체제와 권위주의에 대한 불신은 혼돈 선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다. 이들은 관료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질식시키고,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될 때 필연적으로 타락하여 약자를 핍박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폭군이나 압제자에게 가장 맹렬히 저항하는 투사가 되곤 한다. 그러나 질서 자체를 맹목적으로 파괴하려는 '혼돈 악'이나 단순한 파괴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이들이 부조리한 체제를 뒤엎거나 법을 무시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궁극적으로 만인이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다.
혼돈 선 가치관은 유연성과 강한 결단력이라는 장점을 지니지만, 동시에 여러 한계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창의적이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소외되고 핍박받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조건 없는 든든한 구원자가 된다. 반면, 이들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 방식은 안정과 원칙을 중시하는 집단이나 '질서 선' 성향의 인물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빚게 만든다. 목적이 선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는 이들의 독자적인 방식은 때로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거나, 타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 독단적인 영웅주의로 변질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대중문화와 창작물에서 혼돈 선 성향은 대개 부패한 권력자의 재물을 빼앗아 빈민에게 나누어주는 의적(義賊), 억압적인 거대 제국에 맞서 싸우는 저항군, 혹은 무능한 공권력과 법의 테두리 밖에서 직접 악당을 처단하는 자경단(Vigilante)의 모습으로 자주 묘사된다. 대표적인 고전적 원형으로는 로빈 후드가 있으며,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 약자를 보호하는 수많은 다크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 중 상당수도 이 가치관에 부합한다. 이들은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행동하는 역동적인 매력을 지녀, 서사의 주인공으로서 대중의 큰 카타르시스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