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무(胡舞)는 고대 중국에서 서역(西域)이라 불리던 중앙아시아 및 인도 등지의 이민족으로부터 전래된 무용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주로 한나라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여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황금기를 맞이했다. '호(胡)'는 당시 중국인들이 서쪽의 이민족을 일컫던 명칭으로, 이들의 문화가 실크로드를 통해 중원으로 전파되면서 호무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 호무는 기존 중국의 전통 무용인 아악이나 문무와는 확연히 다른 역동적이고 이국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호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빠르고 격렬한 회전과 도약, 그리고 리드미컬한 동작에 있다. 대표적인 종류로는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호선무(胡旋舞)'와 공중으로 높이 뛰어오르거나 격동적인 동작을 선보이는 '호등무(胡騰舞)', 그리고 술에 취한 듯한 동작을 섞어 추는 '자지무(柘枝舞)' 등이 있다. 호선무는 주로 여성 무용수들이 화려한 비단 위에서 회전하며 추는 춤으로 유명했으며, 호등무는 남성 무용수들의 힘 넘치는 동작이 강조되는 특징을 보였다.
당나라 시기에 호무는 황실과 귀족 계층뿐만 아니라 일반 평민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유행하였다. 특히 당 현종과 양귀비는 호무의 열렬한 애호가로 전해지며, 변방의 장수였던 안록산 또한 호선무에 매우 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러한 이국적인 무용의 유행은 당시 당나라가 지녔던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성격을 대변하는 문화적 현상으로 평가받는다. 호무의 확산은 음악, 복식, 예술 전반에 걸쳐 서역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학적 측면에서도 호무는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졌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는 그의 시 '호선녀(胡旋女)'를 통해 무용수의 회전이 눈보라나 바퀴의 움직임보다 빠르다고 묘사하며 호무의 역동성을 극찬하였다. 또한 돈황 막고굴의 벽화나 당삼채 무용 인형 등의 유물에는 호무를 추는 무용수의 복식과 동작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당시의 공연 양식을 고증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러한 기록들은 호무가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 예술적 완성도를 갖춘 장르였음을 입증한다.
송나라 이후 유교적 가치관이 강화되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호무 특유의 분방함과 격렬함은 점차 쇠퇴하였다. 그러나 호무의 리듬과 동작의 일부는 중국 전통 연희인 경극이나 민속 무용 속에 흡수되어 그 맥을 이어갔다. 호무는 동서양 문화 교류의 산물로서 외래문화가 현지 문화와 결합하여 어떻게 새로운 예술적 양식을 창출하고 변화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