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성 둔주(Dissociative Fugue)는 기억 상실과 더불어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을 망각하고 가정을 떠나 예정에 없던 여행을 하거나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해리 장애의 일종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잊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리적인 이동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해리성 기억상실과 차별화된다. 환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며, 때로는 전혀 다른 인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도 한다.
둔주 상태에 있는 동안 환자의 외견상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들은 목적 없이 방황하기보다는 특정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며, 타인과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수행하기도 한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은 해당 인물이 해리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둔주는 짧게는 몇 시간에서 며칠간 지속되기도 하지만, 드문 경우에는 수개월 이상 지속되어 완전히 새로운 직업과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이 질환의 주요 원인은 극심한 심리적 스트레스나 외상적 사건이다. 전쟁, 자연재해, 심각한 개인적 위기, 또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서적 갈등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방어 기제가 작용한다. 환자는 현실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리함으로써 심리적 보호막을 형성하려 한다. 이는 뇌의 기질적 손상보다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기능적 장애의 성격이 강하다.
둔주 상태에서 깨어나는 과정은 대개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 환자가 원래의 정체성을 회복하면 둔주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역행성 기억상실 증상을 보인다. 반대로 둔주 상태 동안에는 원래의 자신에 대한 기억을 상실한다. 회복 직후 환자는 자신이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거나 심한 수치심, 우울감, 불안을 경험할 수 있으며, 이는 정서적 후유증으로 남기도 한다.
과거에는 독립된 진단명으로 분류되었으나, 최신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5)에서는 해리성 기억상실의 하위 유형인 '해리성 둔주를 동반하는 해리성 기억상실'로 분류된다.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상담이나 정신치료를 통해 둔주를 유발한 근본적인 심리적 외상을 직면하도록 돕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예후는 양호하여 단기간에 회복되지만, 스트레스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재발의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