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지마 다이스케의 만화 '디엔비엔푸'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할머니(An-ba)는 베트민(베트남 독립동맹회) 소속의 전설적인 암살자이자 전사이다. 작품 내에서 본명보다는 주로 '할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서구 열강의 군대에 맞서 싸우는 베트남의 저항 정신과 공포를 상징하는 핵심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외형적으로는 검게 물든 치아와 베트남 전통 의상을 착용한 평범하고 왜소한 노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겉모습과 달리 실체는 수많은 프랑스군과 미군을 단신으로 학살한 괴물 같은 전투력을 지닌 인물이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살육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글이라는 폐쇄적이고 험난한 지형을 완벽하게 이용해 적들에게 보이지 않는 공포를 심어주는 사신과 같은 존재감을 발휘한다.
할머니는 단순히 무력이 강한 캐릭터를 넘어 베트남이라는 땅 자체가 지닌 원초적인 생명력과 원한을 대변한다. 주인공 히카루와의 만남을 통해 기묘한 관계를 형성하며, 서구 열강의 침략에 맞서는 토착민의 처절하고도 잔혹한 복수심을 형상화한다. 그녀의 존재는 독자들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더불어,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운 침략자가 느끼는 근원적인 외포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작중에서 할머니가 구사하는 무술과 전투 방식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강력하게 묘사된다.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소대나 중대급 병력을 순식간에 궤멸시키거나, 현대식 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구식 냉병기나 맨손으로 제압하는 장면은 작품의 판타지적 요소를 극대화한다. 이는 당시 베트남 유격대가 프랑스군과 미군에게 주었던 심리적 압박감과 공포를 극단적으로 과장하여 표현한 예술적 장치이기도 하다.
'디엔비엔푸'의 할머니는 전형적인 노인 캐릭터의 틀을 깨부수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서브컬처 팬들 사이에서 큰 인상을 남겼다. 작가 특유의 귀여운 그림체와 대비되는 할머니의 잔혹하고 거침없는 행보는 작품 전반에 흐르는 기괴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 캐릭터는 전쟁 만화 역사상 가장 독보적이고 강력한 노인 캐릭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