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韓濩)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다. 본명은 한기(韓岐)이며, 자는 자정(子正), 호는 미암(眉巖)이다. 한호는 1543년 한계미(韓繼美)와 신천강씨(信川姜氏) 사이에서 출생하였고, 그의 조부는 한백륜(韓百倫)이다.
한호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능하였고, 20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이후 관직에 오른 그는 여러 차례 승진하며 중추부지사, 지미원서사 등의 직책을 역임하였다. 그의 공적 중 하나는 기묘사화 후 지리산으로 피신한 중종을 호위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충성심과 용병술을 인정받았다.
한편, 한호는 학문에도 깊은 조예를 보였는데, 특히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그는 조식, 이황, 이이 같은 당대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사상을 배웠다. 또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여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미암집(眉巖集)」, 「소학유설(小學釋義)」 등이 있다.
또한 한호는 서예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조선 중기의 대표적 서예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의 서체는 고고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그의 서예가 주목받은 바 있다.
한호는 1615년 별세하였으며, 그의 학문과 업적은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그의 생애와 업적은 조선 중기의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