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後漢)은 중국 역사에서 후한 왕조를 의미하며, 기원후 25년부터 220년까지의 기간을 포함한다. 후한은 전한(前漢)의 뒤를 이어 성립되었으며,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었다. 후한의 창건자는 유방의 후손인 유수로, 그는 전한의 멸망 이후 약 50년 간의 내란을 끝내고 왕조를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후한은 중앙집권적 체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여러 문화적 및 경제적 발전을 이룬 시대였다.
후한 시기의 정치적 구조는 엄격한 관료제에 의해 운영되었다. 황제의 권력이 강력했지만, 동시에 외척과 권신들이 세력을 늘리면서 정치적인 불안정을 야기하기도 했다. 특히, 후한 말기에 이르러 황제의 권위는 약해지고, 각 지역의 군벌들이 세력을 확장하며 분열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한나라의 통일성이 흔들리게 되었고, 결국 삼국시대로 이어지는 기초가 형성되었다.
문화적으로 후한은 유교가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은 시기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교육과 과거제도가 중시되었고, 많은 학자들이 등장했다. 동양 철학, 수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한서’와 같은 역사서가 편찬되었다. 또한, 후한은 실크로드의 개척과 해외와의 교류를 통해 상업적으로도 번영하였다. 이 시기에 중국은 동서 문화의 융합이 이루어지며, 다양한 물품과 사상이 교류하게 되었다.
후한의 멸망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촉발되었다. 내부의 권력 다툼과 지방 군벌들의 반란이 커지면서 나라의 통제가 어렵게 되었고, 외부의 침입 또한 심각해졌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220년에 마지막 황제가 처형되면서 후한은 공식적으로 끝났다. 이후, 삼국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중국의 역사에는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 후한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역사적, 문화적 연구의 주제가 되어 있으며, 다양한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그 가치를 찾아내고 있다.